분당차병원이 신생아 낙상 사망사건을 3년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환자안전장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병원이 조직적으로 의료사고를 숨길 경우 환자들은 사고여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 다시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비롯해 진료기록부 조작 방지 등 환자를 보호할 시스템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2016년 8월 이 병원 의료진(레지던트)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신생아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해당 신생아를 소아청소년과로 옮겨 치료했지만 결국 몇 시간 뒤 숨졌다.
그런데 수사결과 병원 측은 아이를 떨어뜨린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고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출산 직후 소아청소년과에서 찍은 아이의 뇌초음파 사진에 두개골 골절 및 출혈 흔적이 있었는데도 병원은 이를 감췄고, 전자의무기록의 일부를 삭제한 정황도 포착됐다.
우선 환자들은 적어도 수술실에 CCTV가 설치돼 있었다면 병원이 낙상사고 자체를 은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술실 CCTV 논란은 지난해 무자격자 대리수술 문제로 불거졌지만 의료계 등의 반대로 법제화로 이어지지 않고 찬반 논란에 그쳤다. 환자단체가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법제화 촉구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여왔지만 수술실 CCTV관련 법안조차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번 낙상 사건도 수술실이라는 사각지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수술실 CCTV나 내부제보자가 없이는 알 수 없는 문제”라며 “이제는 수술실 CCTV 법제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이번 차병원의 사고 은폐와 관련 진료기록부 조작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예방 시스템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일반적인 진료기록부 조작과 달리 전자의무기록 자체를 없애는 시도가 나왔다는 점에서 전자의무기록의 신뢰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차병원 사건은 단순 의료사고 은폐와는 다르다. 전자의무기록을 조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낙상 후 두개골 골절과 출혈 흔적이 찍힌 뇌초음파 영상자료에 대한 원본 작성기록과 로그인기록까지 인멸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일반적으로 진료기록을 수정할 수 있어도 기록 자체를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는데 이번 사건에서 병원이 외부업체까지 불러서 조직적으로 삭제를 한 것이 밝혀졌다. 병원 책임자의 지휘 하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9월 환자가 진료기록부의 수정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예강이법’도 의료기관의 허위기록과 은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의료기관이 전자의무기록을 수정이 아닌 삭제할 경우 통제할 방법이 없다.
안 대표는 “전자의무기록 보안시스템의 취약성도 문제지만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인 점도 문제다. 결국 의무기록 조작에 대한 엄중한 처벌, 기술적 보완 등 총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환자안전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최대한 올해 상반기가 가기 전에 환자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수술실 CCTV와 국회에 계류돼있는 환자안전법 관련한 내용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수술실 CCTV 의무화의 경우 환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로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약 병원이 조직적으로 사망사건을 은폐한 것일 경우 처벌강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과장은 “의료기관이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기록부를 훼손하거나 고의로 삭제할 경우 의료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과 자격정지 1개월로 가장 강한 처분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호균 의료 전문 변호사도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죄, 허위진단서작성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 또 환자에게 사고를 알리지 않은 부분도 의료법 위반이 해당한다. 낙상 자체는 실수일 가능성이 높은데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은폐한 부분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 15일 신생아 낙상 사망 사고와 관련해 진단서 허위발급 등 증거인멸을 주도한 이 병원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의사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관련 의료진 9명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병원 측은 신생아 사망이 낙상 사고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부모에게 사고를 알리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었다”면서도 “신생아는 태반 조기박리와 태변흡입 상태로 호흡곤란증후군과 장기내 출혈을 유발하는 혈관내 응고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등 매우 중한 상태였다. 레지던트가 아기를 안고 넘어진 것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고 여러 질병이 복합된 병사로 판단해 부모에게 사고를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