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살예방'을 국정과제로 지정해 자살률 감소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유독 낮은 국내 항우울제 처방률이 주목된다.
17일 보건복지부의 '의약품 소비량 및 판매액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1000명당 항우울제 소비량은 22 DID(하루소비량)로 확인됐다.
2016년(19.9DID)보다 다소 증가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 62.2DID(2016년 기준)의 약 3분의 1수준이다.
국내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2위를 다툴 정도로 높은 데 비해 항우울제 처방률은 꼴찌에서 두번째 성적에 그치는 것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항우울제 처방 규제가 우울증 치료문턱을 높이고,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OECD국가 중 상위권인 자살률을 낮추려면 항우울제 처방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관련 처방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급여기준에서는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계열 항우울제 처방기간을 정신과와 신경과 의사 외에는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진료실에서는 각종 질환과 동반되어 나타나는 우울증에 대한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경증이나 중등도 우울증은 가정의학과나 내과, 산부인과 등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고, 주요 질환과 함께 우울증이 동반되기도 한다"며 "일례로 만성 소화불량으로 내과를 찾은 환자의 일부는우 울증 증상이 소화불량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처방 제한 때문에 이런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신과 이외의 과는 SSRI를 60일만 처방하라는 법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항우울제는 최소 4-5개월 정도는 써야하는 약이다. 제한된 60일만 약을 쓰고 끊을 경우 부작용이 더 높아진다. 결국 주 질병을 보는 주치의는 우울증 치료를 하지말라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신의료계는 SSRI에 대한 현행 처방기간 제한이 국내 의료현실에 알맞다는 입장이다.
일반의(GP)가 중심인 외국과 달리 전문의가 주를 이루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상 모든 진료과에 SSRI 처방기간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중증 우울증은 정신과의사가 치료하는 것이 의료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현재도 타과 의사의 SSRI 처방이 가능하다. 두 달 정도 약을 썼는 데도 차도가 없다면 정신과에 리퍼해 정신과전문의에게 치료받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1차 의사가 모든 증상을 보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질환에 따라 개별 전문의 찾는 시스템이다. 우리의 상황에 맞춰 환자들에게 가장 최선의 의료가 무엇인지 보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권 이사장은 "우리나라 자살률의 원인은 세대별로 다양하고 접근법도 달리해야 한다. 단순히 SSRI를 60일 밖에 처방하지 못해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