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지난 4월26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DSB)가 우리나라의 일본산 식품의 잠정적 수입금지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 협정’(SPS 협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최종 확정했다. 지난 2015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WTO에 제소한지 4년만의 최종 결론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번 WTO 패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정부는 WTO의 이번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동시에 우리나라에게 일본산 식품의 수입금지 철회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WTO의 결정이 나왔을 때, 우리 언론을 비롯해 일본 내 주요 매체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그간 한일간 벌어진 ‘무역전쟁’은 그만큼 일본에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부실한 대응은 패소로
시작은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대지진으로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이 멈췄다. 다수가 피폭 사고를 당했고, 후쿠시마는 고립된다. 일본 내부적으로도 후쿠시마산 식품은 사실상 유통이 중단됐고, 후쿠시마 거주자들에 대한 차별이 이뤄졌다.
2013년 7월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고 있다는 언론보도의 충격파는 상당했다. 국민들은 일본산 식품 수입 금지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2013년 8월8일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 사실을 시인했다.
발표 한달 후인 9월9일 우리 정부는 임시특별조치를 시행, 일본 8개현의 모든 수산물 및 식품을, 14개현 27품목의 농산물에 대한 수입을 금지했다. 세슘이 검출될 시 추가로 17개 핵종 검사 요구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국산 및 수입산 식품의 세슘 검출기준을 기존 370Bq/kg에서 100Bq/kg으로 강화했다.
일본은 즉각 반발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5월21일 우리나라의 조치중 일부가 SPS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WTO에 제소했다. 1심은 일본의 승리였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당시 박근혜 정부가 한일 분쟁에 소극적이었음을 지적했다.
“2016년 2월 WTO 사무총장 직권으로 우루과이와 프랑스, 싱가포르 3인으로 패널을 구성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WTO 한·일 분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국제 공조를 제대로 못해 패소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민간전문가위원회’는 3차례 일본 현지조사를 실시했지만, 방사능 오염을 확인하기 위해 계획했던 심층수와 해저토는 시료 채취조차 못하고 돌아왔다.”
당시 패널의 지적은 한국 정부가 2013년까지 취한 조치를 합리적인 기간 내에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련 보고서를 통해 “이미 취한 조치를 재검토하지 않아 적법한 잠정조치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한국 정부의 후속 절차 미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 역전
WTO 분쟁해결기구(DSB) 상소심은 일부 절차적 쟁점, 즉 투명성 중 공표의무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쟁점에서 1심 패널 판정을 파기하고 우리나라의 수입규제조치가 SPS 협정에 합치한다고 판정했다. 패소 이후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베 총리는 이러한 결정을 내린 WTO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시대의 변화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 상급심의 현재 방식도 여러 가지 과제가 있다. 논의를 피하는 형태로 결론을 내거나, 결론이 나오기 위해 시간이 너무 걸리거나 한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황한 일본은 다각적인 차원에서 전면적 수입금지 조치 등을 해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으나 한국의 국제법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노력은 정치적 소망의 발현에 그칠 뿐”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에게 국제법적 합법성을 확보한 결론은 상당한 부담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그러나 “유사 WTO 절차 대응을 위해서라도 한국에게 불리한 패널 보고서의 결론조차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며 “재검토 절차와 같이 이미 취해진 조치에 대하여 추가적인 국내적 절차를 진행하는 것과 깊이 있는 과학적 연구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것은 SPS 관련 분쟁에 있어서는 기본에 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