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동료 의사의 잘못을 평가하고 처벌할 수 있는 자율규제방식의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이 도입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일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회와 함께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환자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의 눈초리는 싸늘하기만 하다. ‘가제는 게 편’식으로 면죄부만 남발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20일 JTBC는 2017년 서울 B대학병원에서 어금니에 보철을 덧씌우는 ‘크라운’ 치료를 받은 직장인 A씨의 사연을 소개하며, 타 병원 의료과실에 대해 의료계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운명공동체와 같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에 따르면 A씨는 B병원 치과진료 후 잇몸이 자주 부어 부작용을 의심했지만 B병원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일관했고, 지난해 3월 찾아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도 “특별히 써줄 말이 없다”며 진단서 발급을 해주지 않았다. 이는 동네 치과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A씨는 외국에 있는 병원까지 6곳을 찾아가고서야 ‘대부분 보철이 치아 크기와 잘 맞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재치료를 해야 한다’는 의견의 진단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한국소비자원은 B대학병원에 치료비 환급을 권고했다.
이와 관련 JTBC는 “현행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진단서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현실은 다르다”면서 의료소송 전문변호사와 한 대학병원의사의 말을 인용, 문제점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암묵적 카르텔’이 형성돼있고 다른 의사의 의료과실 등에 방어적이라는 현실을 전했다.
이는 비단 A씨만은 문제가 아니다. 최근 4년여간 C대학병원과 의료과실여부를 따지는 소송에서 승소한 피해자 D(42·여)는 “다들 자신이라면 그런 치료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과실여부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일부는 과실로 보이지만 진단서를 작성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면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소송도 의료감정에만 의존했으면 패소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환자단체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의료분야의 경우 고도의 전문지식에 기반하고 있어 일반인이 과실여부를 따지기는커녕 이해하고 문제를 알아보기조차 힘들뿐더러 의문점이 있어도 다른 의사들에게 감정이나 자문을 구해도 답을 회피하거나 감싸기 일쑤여서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승소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가평가제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듯했다. 전문가평가제의 기반은 의사집단에 대한 신뢰인데, A씨나 D씨와 같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각종 의료기관 내 사고가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상황에서 의사 집단 내 상호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한 의료계 관계자는 “냉정히 얘기해서 의사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전문가평가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야한다. 그 한 방안이 명확한 기준과 조사과정 및 결과에 대한 투명한 공개다. 하지만 의료행위의 특성상 다른 의사가 서류상으로 당시 상황을 모두 파악하는데 한계도 있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도화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가 자체 조사해 복지부에 일정 처분을 의뢰하면 이를 충분히 존중해 행정 처분 등의 조치를 하겠다. 의료계의 자정을 위한 사업이고 방향도 옳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다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할 사안이 많아 제도화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