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엄마’ 찾는 치매 노인 손 잡는 친구…“센터 있어 걱정 없다”

[르포] ‘엄마’ 찾는 치매 노인 손 잡는 친구…“센터 있어 걱정 없다”

‘노치원’이라 불리는 길누리어르신재가복지센터 일일체험 ②

기사승인 2019-06-06 04:00:00

5월 28일 오전 8시 경기도 가평의 한적한 시골길 한가운데 있는 길누리어르신재가복지센터에 방문했다. 지난 2015년 10월 12일 개소한 센터는 월~토요일 주간에 어르신을 돌보는 노인주간보호센터다. 주간보호센터는 낮에는 시설을 이용하고 저녁엔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심적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식사 마치는 요양보호사, 낮잠 시간엔 청소 및 일지 작성

“식사 맛있게 하세요~!”

오후 12시 점심시간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식당에서, 가능한 노인은 프로그램실에서 요양보호사가 차려준 식사를 했다. 테이블마다 요양보호사 1명이 자리해 함께 밥을 먹었다. 이날 메뉴는 잡곡밥과 된장국, 소고기볶음, 잡채, 그리고 싱싱한 각종 채소였다. 음식의 간도 짜지 않고, 양도 적당했다. 이른 아침에 주방에서 꼼꼼하게 아침거리를 준비하던 센터장과 조리사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이날 인기 메뉴는 쌈이었는데, 채소와 쌈장을 더 달라는 이들이 많았다.

식사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요양보호사들은 식사를 마친 노인들을 부축해 거실로 나갔다. 거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넘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들은 노인들이 이동할 때마다 부축한다. 이에 자리를 이동할 때 최소 10분 이상 소요된다. 입소 노인들이 모두 자리에 앉은 후에야 식사하는 요양보호사들은 그 누구보다 빨리 식사를 마쳐야 한다.

 

“천천히 드세요. 저희는 이게 습관이 돼서 밥도 싹싹 긁어 다 먹었어요. 저희처럼 드시면 체해요.”

나는 고작 절반을 먹었지만 요양보호사들은 분주했다. 먼저 자리에 앉은 노인들이 식사를 마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꽤 밥을 빨리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잦았지만, 밥을 ‘마셔야 하는 수준’까지먹을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 노인이 수저를 내려놓았을 때 나도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나면 요양보호사들은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청소를 시작했다. 낮잠시간을 위해서다. 양치질을 마친 노인들은 수면실, 물리치료실, 프로그램실에서 따뜻한 찜질과 함께 휴식을 취했다. 이때 요양보호사들은 거실과 화장실 등을 청소하고 옷에 대소변이 묻은 노인의 옷들을 빨래했다. 장보순 요양보호사는 “바지가 젖는 건 일비재한 일이다. 실수하는 날이나 목욕하는 날 빨래하기 위해 세탁기가 별도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요양보호사는 거실에서, 간호조무사는 물리치료실에서, 사회복지사는 사무실에서 업무일지를 기록하고, 케어 방향성과 개선사항 등을 서로 논의했다. 중간 중간 화장실을 가는 노인들을 부축하긴 했지만, 그나마 마음 편히 커피도 마시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기록하는 시간이었다. 

 

◇ “여기가 어디야?”…치매 노인 손 잡는 치매 노인, “치매 이미지, 사회가 변해야”

‘지금 자면 밤에 잠이 안 온다’는 이유에서 잠을 안 자는 노인도 있었다. 여기서 나이가 가장 많은 박모(101)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가장 심한 구모(96)할머니의 손을 계속해서 주물렀다. 박 할머니는 “손이 작으세요, 발도 작고”라는 기자의 물음에 “키도 작고”라고 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옆에 할머니는 친구예요?”라는 말에는 “친구 아냐. 그냥 센터 같이 다니는 거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구 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는 할머니였다.

그때 구 할머니가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왔다. 치매 증상을 처음 본 날이었다. 구 할머니는 “여기가 어디야, 아이고 엄마”, “나 밥 왜 안 줘”, “(나를 바라보며) 아기야?”라고 하는 등의 물음을 계속해서 던졌고,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 ‘엄마’를 찾는 할머니를 보면서 부모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름만 불러도 코끝이 찡해지는 ‘엄마’의 존재는 치매 할머니에겐 영원한 기억이었다.

그 옆에는 박 할머니가 있었다. “여기가 어디긴, 센터지”, “밥 먹었잖아”, “아기 아냐, 손녀야”라고 답하며 구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이선아 센터장은 “치매, 이런 시설에 대한 어르신들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 ‘치매는 벽에 똥칠하는 질환’인 것”이라며 “지금 센터에 오신 분들은 자식만 바라보고 온 세대인데, 자식들에게 불편을 끼칠까봐 치매 들면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양시설도 버려지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물론 치매가 고칠 수 있는 병은 아니지만 TV나 광고에서 그걸 너무 강조한다. TV에서 의사들이 ‘치매는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늦출 수는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르신들은 순식간에 ‘치매는 못 고치는 거래’라고 말한다”며 “내가 극복할 수 있다고 해도 의사 말이 정답이다. 이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회다. 광고나 다큐멘터리에서 좀 더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또 어르신들은 뉴스를 보고 스스로 판단한다. 요양원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그런데 가면 죽어야 해, 우린 맞아 죽어’라고 한다”며 “어르신들이 겪어야 하는 요양시설에 대한 인식이 안 좋게 변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 보호자 만족도 높지만 ‘시간’으로 계산된 지원금, 운영 고충 토로해

2시가 조금 넘자 잠에서 깬 노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이불을 정리하고 혈당체크 및 복약을 도왔다. 서경희 간호조무사는 “매일 아침에 혈압을 재고, 당뇨가 높으신 분들은 2~3일에 한 번, 보통이신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혈당체크를 한다. 키와 몸무게 등 전체적인 건강검진은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설명했다.

 

3시는 오후 간식시간이다. 작업치료의 일환으로 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게임을 진행했다. 요일을 맞추거나 과일가게에 있는 과일을 말하는 게임인데, 맞춘 사람에게는 과자를 줬다. 물론 모든 노인에게 과자를 주기 위해 맞추지 못한 이에게는 여러 차례 기회를 줬다. 이어 요양보호사는 과일이 들어간 푸딩을 나줘 주며 다음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4시에는 작업치료사인 외부 강사가 센터에 방문했다. 대부분의 노인은 수면 대신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이번 프로그램의 참여를 택했다. 이날의 책은 ‘팥죽할멈과 호랑이’였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주변의 도움이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이 있는 책이다. 이어서는 동화 속에 나오는 ‘토끼’를 만들었다. 종이를 접고, 색칠을 하며 손‧뇌운동 및 치매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5시 저녁시간을 앞두고 인사를 나눈 뒤 가평역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다.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는 센터 이용자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기사는 “우리 어머니도 여기 다니시는데, 보호사이신가요?”라고 물었다.

그에 따르면 모친은 휠체어 없인 거동할 수 없어 약 1년 전부터 센터를 이용했다. 경제적 부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센터 이용을 택했다는 그는 본인과 모친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 성격이 활발하시긴 하지만 처음에는 적응을 못 하실까 봐 불안했다. 하지만 금세 노인분들과 친해지고, 매일 아침 센터 가는 날을 기다리시더라”라며 “이용료가 달에 30만원 정도인데 나도 빨래만 하면 되니 편하고 걱정이 없어 좋다. 집에 있었으면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드셨을 텐데 맛도 좋고 균형 잡힌 식사를 드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집에 있을 땐 36㎏이시던 분이 지금 4㎏이 찌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시대가 왔다. 걸어 다니는 것이 축복이다. 젊었을 때 관리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간보호센터 이용료는 장기요양등급과 1일당 급여제공시간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급자는 급여비용의 15%를 본인부담금으로 납부하며, 기초생활수급권자와 감경대상자는 본인부담금 면제 또는 40~60%를 감면받을 수 있다. 4등급 수급자를 기준으로 1일 8시간이상~10시간미만 및 월 20일 이용한 경우 기관에 납부하는 본인부담금은 14만19990원이다. 식사재료비 등의 비급여를 제외했을 때다. 따라서 기관별로 식사재료비 금액은 차이가 날 수 있고, 이에 대한 별도의 지원금은 없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노인 1인당 일정 금액의 운영비를 센터에 제공한다. 그러나 이선아 센터장은 현재 시간당으로 계산하는 지원 체계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즉, 어린이집의 경우 월 11일 이상 출석하면 정부 보육료가 나오지만, 주간보호센터의 경우 노인이 머문 ‘시간’ 만큼만 지급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9명의 노인을 케어하기 위해 5명의 요양보호사를 뽑았지만, 갑자기 병원에 내원하거나 입원하게 된 노인이 발생했을 때 그 기간만큼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해 인건비 부담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어린이집은 잠깐만 왔다가도 출석이 인정되지만 어르신들은 그 시간만큼만 인정된다. 어르신의 경우 겨울이 되면 입원하거나 집에서 쉬시는 분들이 많다”며 “그분들이 언제 아프고 쉬실 줄 알고 계산해서 요양보호사를 뽑는 게 아닌데, 어르신 안 나온다고 선생님들에게 며칠 쉬라고 할 수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잠깐 외출하거나 병원을 간다고 해서 밥을 빼라고 할 수도 없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보호자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다”며 “적어도 센터 정원에 대한 한 달 치 수가는 줘야 나도 마음 편히 인건비를 줄 수 있다. 어르신 2~3일만 결석해도 선생님들은 내 걱정을 한다”고 호소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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