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에 '낙태 전문병원' 떠올라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에 '낙태 전문병원' 떠올라

'낙태 건보적용' 찬반 엇갈려..의료인 '낙태 거부'는 존중

기사승인 2019-07-09 01:00:00


“낙태 수술을 원치 않는 의사나 기관에게 낙태 의료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를 포기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8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태죄 헌재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정책 토론회에서 홍순철 고대의대 산부인과 교수(성산생명윤리연구소 총무)는 “낙태 시술기관을 지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인숙 의원이 주최하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와 한국가족보건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토론회에서는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내린 현행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이후 입법방향과 관련 ‘낙태 반대 및 생명 존중’에 방점을 찍은 논의가 이뤄졌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향후 낙태 허용범위 범위가 확대될 예정인 가운데 인공임신중절(낙태) 시술을 실시하는 산부인과 의료현장에 대한 법 제도적 기반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행 의료법 제15조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없이 환자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에 이날 의료계 등은 낙태죄 위헌 판결에 따라 ‘진료거부에 대한 정당한 사유’에 낙태를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홍순철 교수는 “분만을 담당하는 많은 산부인과 의사는 오늘도 임산부의 태아를 생존가능 주수까지 임신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캐나다 등 낙태를 허용하는 외국의 경우처럼 낙태기관을 지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을 본업으로 사는 의사의 자기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에서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고,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상담하는 것을 의무화하며 시술의료기관과 별도의 상담기관에서 상담하고 숙려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며 “낙태의 허용기간은 여성의 건강에 부담이 덜 되는 임신 10주 이내로 제한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차희제(산부인과 전문의프로라이프의사회 대표도 ‘낙태 시술기관 지정’에 찬성했다. 차 대표는 “낙태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반드시 대두되는 문제가 의사들의 낙태시술 거부에 관한 것이다. 이는 결코 진료거부와 같은 강제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국가에서 지정하는 시술기관 설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허용 주수에 대해서 차 대표는 “임신 10주 이내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해 임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임신 22주의 아기를 낙태하다보면 합병증과 후유증의 위험률이 높아져서 궁극적으로 산모의 건강과 행복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정순 한국청소년상담학회 국가정책개발위원장(프로라이프여성회 대표)은 “초기 임신 10주 이내의 경우 상담절차 혹은 위원회를 통해 숙려기간을 두고 여성에 충분한 상담을 제공해야 한다”며 “공공의료기관 낙태시술전문기관을 지적하고, 상담기관과 시술기관을 분리해야 한다”며 공감의 뜻을 밝혔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낙태죄 위헌 판결에서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과 임신부 자기 결정권을 고려해 임신 22주 내외 이전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비하면 이날 제시된 ‘임신 10주 이내 허용’은 다소 엄격한 기준이다. 

‘낙태수술의 건강보험 급여화’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우선 의료계는 ‘건강보험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순철 교수는 “국가는 낙태수술의 증가를 막아야 하고, 낙태가 필요한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낙태수술 급여화를 통해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의사에게는 임신 유지 관련 인센티브 제도를 강화해 임신과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희제 회장도 “‘낙태수술=돈벌이’라는 등식을 불식시켜야 결국 낙태가 줄어들 것”이라며 “낙태수술의 의료보험 급여화 추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낙태수술이 좋은 수입원으로서 인식된다면 사실상 지금의 상황과 별다른 차이가 없이, 많은 의사들이 출산보다 낙태를 권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낙태수술을 유산 수술과 같이 의료급여화 하면 낙태시술 비용이 10분의 1로 급감하게 되므로, 의사들이 낙태를 우선적으로 권하기보다 객관적 조언을 할 것이기 때문에 낙태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낙태 수술 급여화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도 나왔다. 건강보험 급여화가 ‘낙태에 대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고영일 자유와인권연구소 소장(변호사)은 “낙태수술의 급여화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낙태에 대한 손쉬운 접근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신유지 및 출산에 대한 인센티브와 배치되는 정책이다. 낙태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낙태의 접근권을 제한하고 임신유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출산장려책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편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 낙태 관련 여론(무선 ARS전화)조사한 결과, 산부인과의사가 양심과 신념에 따라 낙태시술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응답자의 77.8%가 '의사의 양심과 신념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무조건 시술을 해야한다'는 12.7%,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9.5%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낙태시술 전문의료기관의 지정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체 응답자의 75.5%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하지 않다', '잘 모르겠다'는 답은 각각 16.5%, 8%에 그쳤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