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11년엔 뭘 했냐면요…” 무대에 선 남자가 운을 떼자 관객들은 일제히 외쳤다. “꺄아악! ‘나를 넘는다’!!” ‘나를 넘는다’는 그가 군 복무 시절 발표한 장병가요다. 7년차 예비군에게 군가 요청이라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남자에게 무대 감독은 첫 소절 노랫말을 일러줬다. 그는 여전히 노래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대신 ‘나를 넘는다’와 멜로디가 비슷한 만화주제곡을 흥얼거렸다. 관객들은 자지러졌다. 만화 주제곡이 이렇게 달콤해도 되느냐는 눈치다. 지난 13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박효신의 단독 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5시간30분, 33억, 11만명…숫자로 보는 박효신 콘서트
이날은 박효신이 지난달 29일 시작한 ‘박효신 라이브 2019 러버스: 웨어 이즈 유어 러브’(박효신 LIVE 2019 LOVERS: where is your love?, 이하 러버스)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시작부터 긴 공연이 될 것임을 예고했던 박효신은 결국 5시간30분가량 공연했다. 이 공연 원래 러닝타임인 4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이다. 박효신은 기존 세트리스트 외에도 ‘해줄 수 없는 일’, ‘동경’, ‘좋은 사람’ 등 과거 발표곡을 즉석에서 불렀다. 그가 지난 20년을 한 해 한 해 돌아볼 때마다 객석에선 당시 발표했던 노래를 불러달라는 아우성이 쏟아졌다. 급기야 장병가요인 ‘나를 넘는다’나 군가 ‘멋진 사나이’를 외치는 관객들까지 생겨났다.
박효신의 음악적 동지이자 공연 음악감독을 맡은 정재일은 그의 곁에서 기타 연주를 곁들였다. 두 사람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도란도란 노래를 시작하자, 1만5000여명이 모인 대형 공연장이 순식간에 소극장으로 느껴지는 마법이 펼쳐졌다. 이들은 군대에서 선후임으로 연을 맺었다. 2014년 ‘야생화’를 시작으로, 2016년 나온 박효신의 7집 수록곡 대부분을 함께 만들었다. 후반 작업을 앞두고 있는 박효신의 정규 8집에도 정재일과 함께 한 곡들이 대거 실린다.
박효신은 ‘러버스’ 공연을 10개월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무대는 20번, 큐시트는 17번의 수정을 거듭해 완성됐다. 연출을 맡은 정현철 감독을 닦달(?)한 결과다. 여기에 9개의 대형LED 스크린과 17미터 높이의 LED 타워,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 등 “체조경기장 공연 역사상 최다 물량”을 들여왔다. 박효신은 3년 전 ‘아이 엠 어 드리머’(I am a dreamer) 콘서트 때 도입한 360도 무대를 수정‧보완했다. 밴드 연주자들과 떨어져 공연하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10개의 이동식 무대가 밴드 멤버들을 싣고 헤쳐모여를 반복했다.
글러브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박효신은 ‘러버스’ 무대를 제작하는 데만 33억여원을 투자했다.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공연의 평균 무대 제작비의 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동원된 스태프의 수는 800여명에 달한다. 8회 공연(6회 콘서트, 2회 팬미팅)에 다녀간 관객 수는 11만 여명으로,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국내 솔로 가수 공연 가운데 가장 많다.
“외롭지 않은 우리는 ‘러버스’”
눈물이 많기로 유명한 박효신은 ‘러버스’ 공연의 마지막 날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 앙코르곡 ‘연인’의 마지막 소절, 그 중에서도 마지막 음절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였다. 고요하던 눈동자에 파도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너무 사랑한다”는 말을 눈물처럼 터뜨렸다. 무대가 닫힌 뒤에도 관객들은 한참동안 자리를 지켰다. 공연장엔 퇴장을 알리는 ‘연인’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박효신의 목소리 위로 관객들의 목소리가 포개졌다. 잠시 후, 박효신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몇 번이나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공연장 안의 노랫소리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가수와 관객의 깊은 교감이 빚어낸 풍경이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현장미 씨는 “‘웨어 이즈 유어 러브?’라는 부제처럼, 사랑을 찾아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팬들이 박효신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박효신이 팬들 더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그의 진심이 그저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와 닿았을 것”이라고 했다. 현 씨의 발걸음은 공연장 근처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박효신과 같은 꿈을 꾼 것 같아 행복해요. 함께 있어 외롭지 않은 우리가 바로 ‘러버스’ 아닐까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