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품은 태아가 죽어서 나오는 유산. 아이를 기다리는 예비 부모들에게는 다시 겪고싶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유산을 막는 일부 치료제를 3번 이상 유산한 산모 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돼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가 치료비용 전액을 부담하고자 해도 사용길이 막혀있다고 한다.
17일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같은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정부가 난임지원을 대폭 확대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1번의 유산을 경험한 34세 난임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난임 관련 40여가지 검사 결과 유산의 원인이 혈전이상임을 알게됐다. 원인을 알았으니 아기를 품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유산 3번이 아니어서 혈전이상치료에 쓰이는 헤파린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환자부담 100%로 맞는다 하여도 유산 1회인 미자격자에게 해당 치료제 처방 시 병원이 과징금을 받는다며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막힌 유산 3회 제한법을 제발 풀어달라"고 촉구했다.
습관성 유산(반복 유산)이란 임신 20주 이전 자연유산이 반복되는 경우를 말한다. 의학계에서는 통상 3회 이상 반복적으로 유산이 나타났을 때 습관성 유산으로 본다. 2회 이상 유산했을 경우 또 다시 유산을 경험할 확률은 50% 이상으로 알려진다.
유산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 면역학적 요인, 감염, 내분비학적 요인 등 다양하다. 배아 자체의 결함때문에 유산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모체의 문제로 유산되는 경우는 약 10%정도다. 그 중에서도 모체의 면역이상, 혈액순환 문제가 유산의 원인인 경우 각각 '면역글로불린 요법'과 '헤파린 요법(주사)' 등 치료옵션을 적용해볼 수 있다.
면역글로불린은 모체의 면역기능을 일시적으로 저하시켜 모체의 면역계가 착상된 배아를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치료 방법이다. 헤파린은 혈액응고를 막는 제제다. 혈액순환이 나빠 반복 유산이 되는 산모에게 적용하면 혈액순환을 도와 유산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주창우 마리아병원 가임력보존센터장은 "혈전성향증 등 혈액순환 관련 질환이 진단된 반복 유산 환자에게 헤파린 치료를 적용하거나, 세포성 면역에 문제가 있는 반복유산 환자에 면역글로불린 요법을 시행하면 유산율을 20%이하로 떨어뜨려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해당 치료옵션이 3회 이상 유산을 경험한 환자에 한해 처방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혈액순환 관련 질환이 진단된 2회 유산한 환자에게 '헤파린 요법'을 처방하면 불법이 된다.
환자가 전액본인부담으로 치료를 받겠다고 나서도 소용없다. 현행 건강보험체계상 의료기관이 적정진료기준에서 벗어난 환자에 특정진료를 임의적으로 시행하면(임의 비급여)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받게 되어있다.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불법진료를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당장 치료를 원하는 난임 환자들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난임카페 '불임은 없다. 아가야 어서오렴' 관계자는 "난임 환자들에게 유산은 경험할 때마다 괴롭고 힘든 일이다. 자비 치료라도 열여줬으면 하는 것이 환자들의 절박한 마음인데 안 된다고 하니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난임 정책이 확대되면서 임신까지 가는 과정까지는 정책적인 혜택이 높아졌다. 다만 어렵게 이룬 임신을 유지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 환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