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치료를 못해 죽었으면 이렇게 안타깝지는 않았을 겁니다.”
18일,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학교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신희영 어린이병원학교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이 병원학교 설립 배경을 얘기하며 꺼낸 이야기다.
오랜 기간 백혈병과 싸우다 겨우 완치를 받은 환자는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 사회에 복귀했지만 하는 일 없이 술로 세월을 보내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환자의 아버지는 너무나 허망하게 아들을 떠나보내며 신 교수에게 하소연했다.
신희영 교수가 치료 이후에도 환자들이 정상적으로 학업과 사회생활을 잇게 하는 것도 병원과 의사의 역할이라고 느끼게 된 계기였다. 그는 “예산도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병원학교를 개설하려니 많은 난관이 있었다. 다행히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의 큰 관심과 지원 덕택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어린이병원학교 문을 열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병원학교 학생들은 청와대에 초청받아 국무위원들이 회의하는 자리에 앉아 미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현재 학교 앞 스쿨존 설치도 병원학교에서 시작한 ‘어린이안전원년선포’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과 자원봉사자와 의료진들의 많은 관심 속에 오늘 병원학교가 20년을 이어 올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해 수능 만점으로 서울의대에 수석 합격해 주목받았던 김지명 씨 역시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신 교수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학업을 멈추지 않고 사회에 복귀해 크게 성공한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병원학교의 가장 큰 목적은 일상생활로의 ‘정상적인 복귀’다”며 “암을 이겨낸 것 뿐 아니라 학교와 사회에 다시 돌아갔을 때 공백을 느끼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병원학교는 기적을 만들어 주는 배움의 터”이라고 전했다.
2015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조혜원 학생(17세)은 “내 삶의 한 부분을 단지 아팠던 시간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학교는 단지 공부만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었다. 1년 반 병원 생활동안 내가 잊어버릴 뻔 했던 학교와 선생님과 친구들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병원 밖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재 병원학교에서 올해 악성 림프종으로 진단받아 투병생활과 함께 수업을 받고 있는 김재환 학생(16세)은 “병원에서 식사시간과 함께 기다리는 것이 수업시간이다. 지루하고 뻔한 입원 생활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소통을 통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며 “특히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과 서로 응원하면서 병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명환 씨(38세)는 현재 환경부에서 서기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1996년 서울대병원에서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다. 그는 “병원 생활을 하다 학교에 돌아갔을 때 머리가 빠지고 마스크를 썼지만 특별함 없이 생활을 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첫 걸음이 중요한데 투병생활이라는 공백을 느끼지 못하게 도움을 줬던 것이 병원학교다”며 “병원학교는 ‘함께교육’이라는 의미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지금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받은 고마움을 사회에 기여하며 살고자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