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맥주 없나요?”, “네, 일본 제품 없어요.”
24일 오후께 찾은 농협 하나로마트 창동점. 매장 직원에게 손님인척 아사히 맥주, 가쓰오부시, 미소(일본식 된장) 등이 없느냐고 슬쩍 물으니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창동점은 대형마트 중 가장 첫 번째로 일본 제품 불매에 참여한 곳이다. 식품부터 생필품, 잡화까지 130여 개가 넘는 일본 제품을 모두 매장에서 철수시켰다. 매장 곳곳에서 이를 안내하는 문구와 피켓을 마주쳤다.
매대 곳곳의 빈 공간만이 기존 일본 제품의 흔적을 나타낼 뿐이었다. 창동점 측은 현재 이 빈 공간에 국산 제품을 대신 배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상태다. 창동점 관계자는 “130여 품목의 일본 제품을 매대에서 뺐는데, 사실 매출 하락 때문에 내부에서도 반발이 많았다”면서도 “일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높아진 것을 고려해, 고심 끝에 제품들을 빼기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동점을 찾은 다수의 손님들은 이 같은 조치를 반겼다. 생활용품 코너에서 만난 나분영(52‧가명)씨는 “처음엔 일본의 행패가 이 정도까지인 줄 몰랐는데, 어제 뉴스를 보니 이젠 독도까지 걸고넘어지는 것 같더라, 화가 치민다”면서 “절대 일본 제품은 구입하고 있지 않다”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30대 초반의 신혼이라는 김민영(가명)씨도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면서 “가급적이면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매장의 매대 진열을 담당하는 한 직원 역시 “개인적으로도 일본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편”이라면서 “일본 제품을 매장에서 빼기 전까지는 (일본 제품을) 진열할 때, 손님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반일감정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데,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일본 상품을 판다고 하면 고객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하겠나”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농협 하나로마트 입장에서도 ‘일본 불매운동’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농협은 국내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고 농민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매장에서 일본 제품을 판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발생한다. 이에 창동점은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창동점 매대에서 빠진 일본 제품들은 고객의 접근을 막기 위해 모두 창고로 이동된 상태다.
최근에는 농협 하나로유통 수원점이 수입산 코너 절반가량을 일본 제품으로 채웠던 것이 드러나면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창동점 관계자는 “현재 일본 불매운동 참여는 각 지점 재량으로 결정하고 있고, 지점별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라면서도 “불매운동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 만큼 참여하는 곳이 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이어 “창동점에 있던 기존 일본 상품들은 모두 직매입으로, 거래사에 대금을 이미 지급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반면 현재 국내 대형마트 ‘빅3’로 불리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은 거래사와의 관계, 관련 법령 위반 소지 등을 이유로 일본 제품을 모두 철수시키는 건 어려운 점이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소비자 선택권 침해, 국내 수입업체 타격도 업계가 우려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업계는 국민적 여론을 인식해 일본 제품에 대한 진열 위치를 바꾸고, 할인 등 프로모션에서 제외하는 등의 ‘간접’ 조치로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형마트에 대한 여론의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마트 한 지점이 아사히 맥주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가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날 마트산업노조는 롯데마트 서울역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객들에게 일본제품을 안내하지 않겠다”라면서 “대형마트 3사는 일본 제품 판매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이 계속 강해지는 만큼, 대형마트도 좀 더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내놓지 않겠냐는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한편 중소마트를 중심으로 ‘일본 제품 판매 중단’은 급속히 확산 중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동네마트 3000여곳 이상이 동참했다. 2만여곳의 슈퍼마켓이 가입된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도 판매 중단을 선언 후 회원 참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5만 곳에 육박한다는 추산 결과도 나온 상태다. 여기에 광복절이 있는 다음 달에는 일본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곳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