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4월~6월) 철강업계는 사상최초의 제철소 ‘조업정지’ 위기에 몰렸었다. 국내 지자체와 시민·환경단체가 국내외 제철소가 100년간 써온 폭발 방지 설비인 브리더(안전밸브)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해 조업중단을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철강업계와 지자체, 환경부는 ‘산업의 쌀’인 철강산업의 중대성을 감안해 민관협의체를 통한 합의점 도출에 나섰지만 각자 의견차가 커 완전한 해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안전밸브 사태 어디까지 왔나
지난 5월 말 지자체는 포스코·현대제철의 포항·광양·당진 제철소에 조업정지 10일을 사전통보했다. 브리더를 통해 대기오염 물질을 무단 배출했다는 혐의다.
문제로 지목된 과정은 유럽, 일본, 중국 등 전세계 제철소들이 고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정비 과정에 모두 선택하는 조처라는 게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게다가 이 조처를 통해 밸브를 개방하지 않는다면 압력으로 고로의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철강협회(World Steel Association)역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 고로는 정비 등의 목적을 위해 때때로 가동 중지하며, 이때 압력과 온도는 떨어지고, 고로 가스의 구성비가 변한다”며 “이 과정에서 온도, 압력, 가스구성비가 일반적인 작동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블리더를 수동으로 열어 고로의 잔여가스를 대기로 방출하며 이는 잠재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폭발성 대기가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는 설비”라고 전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소량의 고로 잔여가스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특별한 해결방안이 없으며, 회원 철강사 어디도 배출량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서 특정한 작업이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는 보고는 없다”고 설명했다. 브리더 설비는 폭발 방지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도 지자체는 사건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 안건 자체를 환경오염으로 판단하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조업정지 대신 과징금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이며, 현대제철의 경우 오는 11월께 나올 중앙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 조업정지 취소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양사 모두 이번 사건이 과징금으로 일단락되더라도 과징금 처분 자체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는 세계에서 모두 사용하는 방식인 만큼 과징금을 내는 것 자체가 제철소의 조업 방식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기 때문이다.
결국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지난 6월 고로(용광로) 안전밸브 운영과 관련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가 발족한 ‘민관협의체’ 활동이 진행됐다. 협의체는 오는 8일께 해외 고로 운영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만약에 조업정지를 한다면?
최악의 경우 제철소의 조업이 정지된다면 한국경제에 끼칠 여파는 적지 않다. 먼저 자동차·조선·철강·건설 등 철강업계의 국내 전후방 산업계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철강업은 대부분 산업에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핵심 산업이다. 대다수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이에 ‘산업의 쌀’로 불리고 있는데, 만약 제철소의 조업이 중단된다면 사업에 필요한 철강재의 공급 우려와 가격 급등 우려가 크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울러 철강업은 업의 특성상 용광로에 쇳물이 굳지 않도록 생산설비가 항상 가동돼야 한다. 만약 제철소의 용광로가 멈추면 쇳물이 용광로에 들러붙고, 재가동에 최대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또 준비 과정 없이 용광로가 식어버리면 용광로 자체가 거대한 쇳덩어리가 돼 폐기해야 한다. 결국 조업 중단 조치가 현실화된다면 최악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한다.
업계 전문가는 “조업정지가 된다면 1개 고로가 10일간 정지되고 복구에 3개월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같은 기간 약 120만톤의 제품 감산이 발생해 8000여억원의 매출 손실이 있다”며 “산업 생태계를 고려할 때 수요산업과 관련 중소업체들의 어려움도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큰 문제는 대안이 없다. 혼을 내더라도 개선(진전)이 된다면 얼마든지 하는 것이 맞다”며 “다만 이번 건은 제철소 가동을 중단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대안과 해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대안이 없는 상황에 조업정지 처분을 내린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이야기다.
◆철강업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철강업계는 올해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후 대기오염 물질 절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브리더 자체는 기술적 대안이 없지만 개선이 가능한 오염 물질 절감 활동을 통해 긍정적 여론 조성에 나서는 모양새다.
먼저 포스코는 지난달 15일 광양시청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광양 대기환경개선 공동협의체’를 공동 발족했다.
발족식 이후 광양제철소는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지속적 환경시설 투자와 친환경 기술개발, 환경관리 강화 등 크게 3가지 활동을 공표했다. 이를 위해 오염물질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환경설비 투자를 실시할 예정이다.
먼저 석탄, 코크스 야드에 밀폐형 텐트 하우스(Tent House)를 설치해 비산먼지 발생을 제로화하고, 철광석 야드에는 풍향과 분진 발생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해 자동으로 살수방향, 유량을 제어하는 IoT 연계 스마트 살수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환경관리 측면에서는 강화되는 환경법규에 맞춰 굴뚝자동측정기기 TMS(Tele-Monitoring System)을 추가 설치해 대기오염물질 배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 특히 제철공정에서 발생되는 미세먼지 제거장치인 집진기 등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일제 점검해 성능을 최적화할 방침이다.
RIST 미세먼지연구센터와 함께 친환경 기술 개발도 추진한다. 안개 입자가 20㎛ 이하인 미세 살수장치 드라이 포크(Dry Fog)를 활용해 원료야드 등 야외 비산먼지를 저감하고, 배기가스 재순환 시스템 등 대형 연소장치의 오염물질 발생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키로 했다.
현대제철 역시 지난달 핵심 청정설비를 교체 가동해 미세먼지 배출량을 대폭 줄였다.
당진제철소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의 90% 이상은 소결공장(고로에 들어갈 철광석을 5~50m 크기로 다듬는 공정)에서 배출되는데, 현대제철은 신규 대기오염물질 저감장치 SGTS (Sinter Gas Treatment System: 소결로 배가스 처리장치)를 설치해 미세먼지의 주요 성분인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의 1일배출량이 140~160ppm 수준에서 모두 30~40ppm 수준으로 감소시켰다.
또한 내년 6월에는 3소결 SGTS까지 완공될 경우 금번 구축된 1,2 소결SGTS까지 모두 정상 가동되는 2021년에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지난해 2만3292톤에서 절반 이하인 1만톤 수준으로 감소될 전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브리더를 대체할 기술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국가적 화두인 환경, 특히 미세먼지 저감에 대해 철강 업계가 기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브리더 개방 문제 어떻게 될까?
브리더 개방 문제는 첨예한 대립과 강대강 대치를 보였지만 긍정적인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진행된 민관협의체의 해외 고로 운영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모든 글로벌 철강사가 브리더를 이용해 고로 작업을 하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30일 현대제철은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고로 브리더 이슈와 관련해 정부·지자체·산업계·전문가 20여명이 참여한 민관협의체가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며 “특히 최근 출장을 통해 글로벌 철강사 어느 곳도 브리더 없이 고로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중앙부처와 민관협의체가 해결방안을 다각도로 찾고 있는 만큼 문제가 잘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도 “최근 민관협의체 구성원들이 해외 철강사 출장을 통해 견해차를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며 “다수의 글로벌 철강사에서도 한국과 똑같이 안전밸브(브리더)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메뉴얼 상 차이는 있었지만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철강사보다 안전대책에 있어 뛰어났다는 게 현장 평가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갈등이 해결되는 국면에 섣불리 결과를 예단키는 어려운 일”이라며 “다만 철강업계 혹은 지자체 어느 한쪽에 편향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