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 동화 밖으로 나온 소녀들

오마이걸, 동화 밖으로 나온 소녀들

오마이걸, 동화 밖으로 나온 소녀들

기사승인 2019-08-06 07:02:00

그룹 오마이걸은 동화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은 팀이었다.

신비로움을 강조한 콘셉트와 아련한 정서의 음악 때문이다. 이들의 두 번째 미니음반 타이틀곡 ‘클로저’(Closer)가 대표적이다. 아스라이 번지는 신시사이저와 정돈된 리듬, 겹겹이 쌓이는 화음이 포개지며 몽환의 세계를 그린다. 전자음을 가져와 현대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서정적인 기조를 이어간다.

이런 색깔은 풋풋한 가사 내용을 잘 부각시킨다. ‘클로저’를 비롯해 ‘윈디데이’, ‘한 반짝 두 발짝’ 등 오마이걸은 사랑을 만나 설레는 감정을 주로 노래해왔다. 자신의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해 애달파 하는 내용은 여느 ‘청순돌’들과 비슷하지만, 오마이걸은 좀 더 고전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법을 택해 아련함을 극화한다. ‘윈디데이’처럼 햇살이나 바람 같은 자연물에 자신의 마음을 비유하거나 ‘클로저’에서는 별똥별에게 자신의 마음을 실어달라고 소원하는 식이다.

데뷔곡 ‘큐피드’(Cupid)와 ‘라이어 라이어’(Liar Liar), ‘컬러링 북’(Coloring Book) 같은 노래들은 판타지 동화의 챕터 같다. 활기차고 명랑한 곡의 분위기는 어느 말괄량이 소녀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기에 제격이다. 사랑의 화살을 쏘는 요정(‘큐피드’)이나 핑크빛 바다 위 돌고래(‘라이어 라이어’) 등 비현실적인 소재를 등장시켜 독특함을 더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오마이걸은 동화 속에만 존재할 수 없는 팀이다.

작년 1월 나온 ‘비밀정원’은 환상적인 세계에 있던 오마이걸이 동화 바깥 현실로 걸어 나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정적인 선율과 부드러운 목소리는 여전히 꿈결 같고 ‘네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다’는 가사는 여전히 동화적이지만, 노래의 화자는 전에 없이 선명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가졌다. “아직은 별 거 아닌 풍경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만나게 될” 거라는 이 노래 메시지는 한 단계씩 성장해나가는 오마이걸의 여정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요컨대 ‘비밀정원’은 현실 속 오마이걸과 가장 밀착한 콘셉트의 노래였다.

그리고 지난 5일 공개된 ‘번지’(BUNGEE)가 있다. 분위기로 따지자면 ‘비밀정원’의 대척점에 있는 듯한 이 노래는 하지만 실제 오마이걸의 캐릭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접점을 가진다. ‘번지’의 화자는 오마이걸의 지난 발표곡들 중 가장 직관적이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얘기하지만, 이 곡 뮤직비디오엔 주인공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녀들의 즐거운 파티가 묘사될 뿐이다. ‘자, 얘들아. 우린 이제 사랑 안으로 뛰어들 거야. 그러니 손을 모아’라는 뜻의 영어 내레이션도 이런 파티 분위기에 힘을 보탠다. 그리고 이 기세 좋은 소녀들의 모습은 오마이걸의 씩씩함과 명랑함을 비춘다. 

가요계에서 오마이걸은 ‘성장형 아이돌’로 불린다. 음원 차트나 음악 방송 등에서 매번 순위를 높여간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이런 정량적인 성취가 오마이걸의 성장을 충분히 설명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여러 음악적 시도를 통해 오답노트를 줄여가고, 자신 고유의 캐릭터와 노래의 콘셉트 사이의 거리를 줄여간다는 점에서 오마이걸의 성장은 더욱 눈여겨 볼 만 하다. 동화 같은 콘텐츠는 여전히 오마이걸의 강력한 무기이지만, 오마이걸을 ‘동화 속 소녀’로 타자화하기엔 이들의 성장사가 무척 생생하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