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들 단체로 이별했냐.” A씨가 지난달 SNS에 적은 글은 즉각 많은 누리꾼들의 공감을 얻었다.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가 이별 후의 감정을 다룬 발라드곡으로 ‘도배’된 상황을 두고 보인 반응이다. 한여름 불볕더위 속에서 발라드라니. 음원 순위에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지난달 디지털 종합 차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노래는 가수 장혜진과 그룹 바이브의 멤버 윤민수가 함께 부른 ‘술이 문제야’다. 2~5위 노래 중 발라드가 아닌 곡은 영화 ‘알라딘’ 삽입곡 ‘스피치리스’(Speachless)뿐이다. 가수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2위), 송하예 ‘니 소식’(3위), 임재현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5위)이 7월 한 달간 가장 많이 재생되거나 다운로드된 것으로 집계됐다.
8월 들어선 tvN 드라마 ‘호텔델루나’의 OST가 인기다. 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이 부른 ‘그대라는 시’, 싱어송라이터 헤이즈의 ‘내 맘을 볼 수 있나요’, 가수 거미의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 모두 이 드라마 삽입곡이다. 드라마 시청률이 8~9%대(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로 높은 데다가, 흥행력이 입증된 가수들이 참여해 음원 순위 경쟁에선 ‘무적’이나 다름없다.
여름을 겨냥한 댄스곡의 성적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그룹 세븐틴, 오마이걸 등이 신곡을 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긴 했으나, 이내 발라드곡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룹 있지의 ‘아이씨’(ICY)가 그나마 일주일 이상 톱10을 머무르며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그룹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나 트와이스 ‘댄스 더 나잇 어웨이’(Dance the night away)처럼 한 해 여름을 대표할 만한 댄스곡은 아직 없다. ‘서머 송’(Summer Song) 실종 사태. 정말 한국 사람들이 단체로 이별하기라도 한 걸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의외로 간단했다. 댄스곡이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기를 끌 만한 댄스곡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그룹 씨스타가 해체한 뒤로 ‘차세대 서머 퀸’으로 꼽을 만한 팀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여름에 활동해 좋은 성적은 거둔 그룹은 많지만, 씨스타처럼 여름 활동에 집중하는 그룹은 거의 없어 ‘서머 퀸’ 타이틀이 무색하다는 주장이다.
노래가 계절성을 반영하는 패턴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올봄에는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등 이른바 ‘봄 캐럴’의 유행이 예년보다 덜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여름은 댄스곡’이란 패턴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마냥 들뜨고 즐기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우니, 오히려 차분한 팝 음악이 덜 덥게 느껴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것이 음악 감상에 있어서 계절성이 희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계절성이 다르게 발현된다고 보는 편이 더욱 적절하다”면서 “음악 감상 패턴이 변하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