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으신 분들, 직접 장 봐 봤나”…종이박스, 왜 ‘뜨거운 감자’ 됐나

“높으신 분들, 직접 장 봐 봤나”…종이박스, 왜 ‘뜨거운 감자’ 됐나

[르포] 대형마트 종이박스, 업계 ‘퇴출’, 소비자 ‘유지’…환경부 "종합적 판단해 최종 검토"

기사승인 2019-09-06 03:00:01

“찌익, 찌익, 찍, 찌이익, 찍찍.”

지난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의 한 대형마트. 지하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테이프를 길게 늘리는 파열음이 귓가에 울려 퍼진다. 사람들이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를 종이박스에 붙이는 소리다. 대여섯의 손님들이 카트를 옆에 두고, 비닐끈·테이프를 이용해 물건을 담은 박스를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여러 식구와 매장을 찾은 듯한 한 중년 여성은 무려 3개의 종이박스에 물건을 담아갔다. 

흔히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앞으론 이런 모습이 점자 사라질 전망이다. 환경부와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농협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 4사는 지난달 29일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들은 시범사업 등 준비기간을 거쳐 이르면 오는 11월 매장에서 종이상자와 포장 테이프, 끈 등을 없앤다는 방침이다. 관련 폐기물을 줄이고 다회용 장바구니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를 두고 대다수의 현장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트린다. 활용도가 높은 종이박스가 사라진다면 큰 불편이 예상된다는 것. 이곳 매장에서 만난 김현상(48‧가명) 씨는 “장을 보다보면 계란 등 부서지는 쉬운 물건도 있고, 보통 차에 실어가지 않느냐”면서 “앞으로는 차에 박스랑 테이프도 가지고 다녀야 하나”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트 장바구니는 용량이 작아 박스 대체가 어려울 것 같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폐기물 감소’라는 시행 취지도 크게 공감을 사지 못했다. 상품을 담던 종이박스를 다시 재활용해 쓰는 것인데, 가정에서 배출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퇴근 후 장을 보러왔다는 워킹맘 정연지(42‧가명) 씨는 “어차피 버려질 종이박스를 포장지로 재활용하는 것인데, 오히려 이를 적극 개선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높은 분들이 마트를 직접 와 봤겠나, 테이프와 끈을 이유로 종이박스를 없애는 것은 탁상공론”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테이프를 안 떼고 분리수거하면 종이박스의 재활용률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다수의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용산구의 또 다른 대형마트에서 만난 심재환(57‧가명) 씨는 “나름 분리수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종이에 붙은 테이프까지 신경을 써 왔는지는 모르겠다”면서 “미리 알았다면 떼서 버려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찬성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마주할 수 있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3사에 따르면, 연간 사용되는 포장용 테이프와 끈 등은 658톤에 달한다. 다회용 장바구니를 사용하면 한번 쓰고 버리는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인근 효창동에서 거주 중인 40대의 주부 이윤희씨는 “속비닐 사용 금지도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지 않느냐”라며 “장기적으로는 종이박스도 없애고 장바구니를 쓰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이마트는 기존 장바구니의 용량을 늘린 대형 장바구니 제작에 들어갔다. 자동차 적재 등 활용성을 높여 대량 물건 구매 고객의 불만까지 잡겠다는 것이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장바구니 종류를 늘리며 종이박스가 매장서 사라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2016년 9월부터 종이박스를 퇴출하고 장바구니로 대체했다. 환경부 측은 이에 대해 “제주에서는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으로 파악 된다”라고 소개했다. 

대체적으로 업계는 ‘퇴출’을 외치고 소비자는 ‘유지’ 목소리를 내면서 종이박스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환경부도 한 발 물러나 소비자의 의견 수렴을 거쳐 종이박스 퇴출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 2일 설명자료를 통해 “당장 종이박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라며 “여러 사이즈의 장바구니 대여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부 지역부터 시범사업을 추진해 그 효과와 불편사항, 저소득층에 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 이후 최종 적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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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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