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두고 왜 태풍이 와서 쯧쯧...”
지난 8일 오전 서울시 제기동의 경동시장. 좌판 위의 나물을 다듬던 나분희(72·가명) 씨가 아직 흐릿한 하늘을 보며 연신 한숨을 내쉰다. 태풍은 지나갔지만, 추석 전까지 계속 비소식이 있어 마음이 편치 않은 것. 나씨는 “어저께 태풍으로 손님들이 평소만큼 나오지 않았다”면서 “오늘이라도 많이 팔아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태풍 ‘링링’이 서울 근처를 지나던 전날, 일부 야외 좌판들은 아예 장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몇몇 점포는 이날까지도 비닐로 싸여진 채 문을 열지 않았다.
인근 골목에서 건어물 상점을 운영 중인 안상윤(78·가명) 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쟁이 나도 재래시장은 문을 여는 곳”이라면서도 “건강이 안 좋은 몇 노(老)상인들이 어저께 좀 쉰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상인들이 꿋꿋이 장사를 이어갔다고. 그는 “그래도 이곳이 서울 4대 시장 중 하나 아닌가”라며 웃어 보였다.
경동시장 인근에서만 30년간 한약상을 운영했다는 한 80대의 노상인은 “비보다도 강풍이 많이 불었다”면서 “이른 추석이라 가을장마와 겹치게 됐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옆에서 그를 돕고 있던 아들 방모 씨도 “아무래도 재래시장은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면서 “야외 좌판 상인들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상인들은 추석 전 덮친 장마에 야속한 마음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이 시기는 상인들 사이에서 추석 매출의 30% 이상이 발생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다행히 점심께가 지나자, 시장은 사람들로 붐비며 점차 평소의 활기를 되찾아 갔다. 날이 개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장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갈수록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 큰 걱정이다. 시대의 변화가 이들을 엄습하고 있는 것. 새벽배송과 온라인 마켓 등은 이제 이들 상인들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이곳에서 비교적 젊은 연령대의 속하는 과일 가게 상인 정모(53) 씨는 “집에서도 대형마트나 온라인몰을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게 있다”면서 “시장 장사하는 입장에서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라고 털어놨다. 물론 변화하는 트렌드에 상인들도 나름 변화의 노력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마트와 손을 잡고 상생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상생스토어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서로를 돕는 상생매장이다. 대형마트 브랜드가 상권에 진출하는 대신, 재래시장이 팔기 어려운 물건과 노후화된 시설 등을 보완해주는 형태다. 경동시장에는 신관 2층에 들어섰다. 상생스토어 개장 이후 경동시장은 인근 상인들의 매출 상승과 고객층이 젊어지는 효과를 봤다.
하지만 이날 상생스토어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둘째주 일요일이 의무휴업일인 탓이다. 이를 두고 이곳까지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한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몇몇 손님들은 상생스토어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일각에서는 손가락 쇼핑이 대세인 시대, 오프라인 매장이 모두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태풍이 오면 대형마트·재래시장 안 가는 건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7조2147억원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모바일쇼핑을 포함한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도 5개월째 월 1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 상태다. 이날 경동시장에서 만난 장선희(52·가명) 씨는 “약간의 과일이나 나물 정도만 구입하러 장을 방문한다”면서 “추석 선물세트와 가공식품 등은 온라인을 통해 장만했다”고 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