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시간이다. 제 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는 303편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단 열흘. 상영되는 영화수는 지난해보다 20편 줄었지만, 월드 프리미어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총 145편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한 편의 영화가 고작 1~4번 상영되는 만큼 순간의 선택은 중요하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한 편의 명작이라도 더 즐길 수 있도록 눈여겨볼만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이미 온라인 예매가 매진된 작품도 있지만, 전체 좌석의 20~30%가 현장 예매로 남아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희망을 놓지 말자.
△ 본격 예매 경쟁에 뛰어들고 싶다면 - ‘더 킹: 헨리 5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1분 21초. 영화 ‘더 킹: 헨리 5세’(감독 데이비드 미코드)가 온라인 예매 매진을 기록한 시간이다. 자유롭게 살아가던 왕자 할이 왕좌에 올라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영국의 운명을 짊어지며 위대한 왕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이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을 맡았고 넷플릭스가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티모시 샬라메는 8, 9일 부산을 방문해 무대인사로 관객들을 만난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온라인 예매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전설적인 여배우(까뜨린느 드뇌브)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발간하면서 그녀와 딸(줄리엣 비노쉬) 사이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이자, 그가 외국어로 외국에서 찍은 첫 영화다.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 에단 호크, 줄리엣 비노쉬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고, 부산영화제엔 ‘더 킹: 헨리 5세’와 함께 갈라 프리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역시 영화 ‘세 번째 살인’ 이후 2년 만에 부산을 찾아 5~7일 관객들을 만난다.
△ 그래도 영화는 작품성이지 싶다면 - ‘쏘리 위 미스드 유’, ‘시빌’
영화 ‘쏘리 위 미스드 유’(감독 켄 로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다. 가족 부양을 위해 프리랜서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 남자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가슴 아프게 묘사했다. 올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처음 선보이는 ‘아이콘’ 섹션으로 소개된다. ‘아이콘’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시빌'(감독 쥐스틴 트리에)도 부산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시빌’은 심리치료사 시빌(버지니아 에피라)이 상담을 위해 찾아온 여인 마고(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를 통해 내면 속 깊이 묻어뒀던 과거와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제16회 국제시네필소사이어티어워즈 여우주연상 수상,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57회 뉴욕영화제 등 전 세계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세련된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제67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마고 역을 맡아 눈길을 끈다.
△ 영화제는 역시 독립영화지 싶다면 - ‘야구소녀’, ‘하트’, ‘69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 작품인 '야구소녀'(감독 최윤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여고생 야구 선수 주수인(이주영)이 프로야구 진출에 좌절하면서도 꿈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다. 배우 이주영이 시속 130㎞ 강속구를 던지는 천재 야구소녀 주수인 역을 맡았다. 이준혁은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최진태 역을, 곽동연은 수인의 어릴 적 친구인 야구선수 이정호 역을 맡았다. 도전하고 좌절하면서도 꿈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냈다는 평가.
영화 ‘하트’는 2년 전 자신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밤치기’로 부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정가영 감독의 신작이다. 유부남 용훈을 좋아하게 된 가영이 자신을 좋아하는 또 다른 유부남 성범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작들처럼 ‘하트’ 역시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발칙한 로맨스를 선보인다. 이번에도 정가영 감독은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 연출과 배우를 겸한다.
‘하트’와 함께 영화 ‘69세’(감독 임선애)도 4회차 예매가 모두 매진된 기대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유일한 경쟁 부문인 뉴 커런츠 부문에 선정된 ‘69세’는 성폭력 문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인 여성 인권과 노년의 삶에 대한 편견을 다룬 영화다. 배우 예수정이 성폭력을 당한 69세 효정 역을 맡았고, 기주봉이 사건 후 효정을 돕는 동인 역을 연기한다. 단편영화 ‘나쁘지 않아’, ‘그거에 대하여’로 각각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와 서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임선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