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시행” 커지는 목소리…악플 감소 효과는 ‘물음표’

“인터넷 실명제 시행” 커지는 목소리…악플 감소 효과는 ‘물음표’

기사승인 2019-10-23 06:00:00

#TV 오락 프로그램에 다이어트 성공 사례로 한 고등학생이 출연했다. 이모(당시 16살)양은 3개월 만에 몸무게를 40kg 감량하며 전파를 탔다. 이양은 이후 예상치 못한 고통에 시달렸다. ‘재수 없다’ ‘지방흡입 수술 받은 것 아니냐’ 등 악성 댓글(악플)의 타깃이 된 것. TV 출연 당시 인기가수 그룹 한 멤버와 이양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공격은 더 심해졌다. 이양은 자신의 SNS에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죽기를 바라나. 정말 힘들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양은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2007년 한 여고생이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지난 14일. 배우 겸 가수 설리(25)가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생전 악플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악플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과도 같다. 매번 악플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할 때마다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 실명제가 거론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악플로 인한 고통은 연예인들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이 학생·성인 6162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폭력 경험 여부’를 조사한 결과, 24.7%가 온라인상에서 언어폭력.명예훼손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 2017년보다 5.7%p 증가한 수치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악플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악플과 ‘선플’(좋은 댓글)의 비율은 4대 1이다. 일본은 선플이 악플보다 4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는 악플과 선플 비율이 무려 1대 9였다.

과거에는 10대에 집중돼 있던 ‘악플러’(악플을 쓰는 사람)들이 전 연령대에 골고루 분포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령별 악성 댓글 작성 경험은 10대(48%), 20대(29%), 30대(17.4%), 40대(14.8%), 50대(11.7%) 순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지난해 경찰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피의자는 20대(33.1%), 30대(21.7%), 40대(16.3%), 50대 이상(15.1%), 10대(13.9%)로 나타났다. 

악플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장 먼저 대두된 것은 인터넷 실명제다. 인터넷 실명제란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을 통해 본인 확인이 돼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다. 지난 2007년 포털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5년 만에 폐지됐다. 지난 1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15일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를 보면 응답자 69.5%가 인터넷 댓글 실명제 도입에 찬성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가 실제로 악플 감소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난 2009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2008년도 본인 확인제(인터넷 실명제)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7년 8월 전체 댓글 1만 3472개 중 1867개로 13.9%였던 악플은 1년 뒤인 지난 2008년 8월 전체 댓글 8380개 중 1086개로 13%를 차지했다. 이에 인터넷 실명제가 악성 댓글 감소보다는 게시판 기능, 즉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10년 나온 논문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우지숙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연구논문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에서는 “실명제 실시가 비방과 욕설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실제로 달성한다 하더라도, 이 제도로 인해 이용자 간 커뮤니케이션 절대량이 적어지고 참가하는 구성원이 달라지며 의사소통 내용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본질적이고 장기적 영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인터넷 실명제 시행 당시에도 표현의 자유 침해와 주민등록번호 남용 등 부작용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지난 2011년 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에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헌법소원을 제기, 결국 2012년 헌법재판소는 “실명제가 불법 정보를 줄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악플이 범죄행위라는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댓글은 하나의 ‘놀이 문화’에 가깝다”며 “댓글을 통해 끼리끼리 모여 재미를 추구한다. 기사에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정보만 편식하고 댓글을 단다. ‘좋아요’ 등 남의 동의를 얻으면서 관심을 즐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악플이 비윤리적인 일이고 범죄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교육시키고 홍보하는 수밖에 없다”며 “또 ‘여자들은 다 강간해야 한다’ ‘여자들은 다 때려 죽여야 한다’ 등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 표현을 규제할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이라고 설명했다.

선플 재단 이사장 민병철 한양대학교 특훈교수는 “인터넷 실명제는 국내 포털에만 적용 가능하고 페이스북 유튜브 등 외국계 SNS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허점이 있다”라며 “또 해외에서는 러시아, 중국 정도만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하는 만큼 사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봤다. 

또 민 교수는 “직장 내 성희롱 방지 교육처럼 학교, 직장에서 1년에 한 시간만이라도 의무교육처럼 악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설리의 사망이) 또 하나의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단발성 사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악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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