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유방암의 달을 기념해 ‘핑크리본 캠페인’이 곳곳에서 열렸다. 핑크리본 캠페인은 암 질환 관련 대중 캠페인의 ‘원조’격으로 각계에서 유방암에 대한 인식개선 및 의료비 지원 등을 위한 활동을 말한다.
유방암은 치료성적이 향상되며 5년 생존율도 크게 높아졌다. 때문에 흔히 ‘쉬운 암’, ‘착한 암’이라고들 부른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유방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92.7%에 달한다.
5년 생존율만 놓고 보면 유방암은 쉽고도 착한 암인 것도 맞다. 그러나 유방암도 암이고, 고운 핑크 리본으로 상징된다고 환자들이 처한 현실까지 꽃분홍빛은 아니다. 국가암등록통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방암의 이면, 바로 '재발률' 때문이다.
유방암 환자 5명 중 1명은 재발하고, 대개 치료 후 1~2년 내에, 드물게는 10~20년이 지나서도 재발한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지만, 조기에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게 유방암이다. 종양 특성 상 질환의 진행이 공격적인 HER2 양성이거나, 수술 전 보조요법과 수술 치료로도 암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경우라면 재발 위험은 더욱 높다.
재발 이후의 치료효과는 이전의 치료효과와는 크게 다르다. 유방암이 재발하면 평균 생존기간은 2~3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5년 생존율이 높다고 해서 ‘조기 유방암’을 쉽게 여기는 인식, 재발 위험이 높은데 불구하고 치료가 끝나면 바로 암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오해는 환자들의 가슴을 두 번 멍들게 한다.
이러한 가운데 유방암의 달인 10월에 수술 전 보조요법과 수술에도 불구하고 암이 발견되는 재발 고위험군 조기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HER2 표적치료제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치료 옵션에 비해 재발 위험을 50%까지 낮추는 임상적 효과를 보여, 국제적 진료 가이드라인에서도 권고되는 치료제이지만 국내 유방암 환자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지원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급여화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의학적 근거가 분명한 치료제들이 아직도 많이 비급여권에 있다. 정부가 여성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전이성 유방암의 치료 환경은 상당한 개선을 보였지만, 조기 유방암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생존기간 연장이 목표인 전이성 유방암과 달리 조기 유방암은 환자가 완치를 목표로 할 수 있는 치료 단계다. 현재의 급여 환경은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생존하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는 치료 기회를 제한하고 전이가 된 후 에야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유방암으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현재의 급여 설계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생존율과 병기가 암의 경중을 나누지는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기에 암은 결코 착할 수도 쉬울 수도 없다. 조기 유방암 환자나, 전이성 유방암 환자나 모두 똑같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전력으로 투병하고 있다.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도 착하지 않은 암에 맞서 남은 인생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치료 기회가 필요해 보인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