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골프를 즐긴 사실이 알려졌다. 또 골프장 방문에 경찰 경호 인력까지 동원돼 공분을 사고 있다.
사단법인 5.18 민주유공자유족회를 비롯한 5개 5.18 관련 단체들은 12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전씨 자택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재판에 출석할 수 없다는 전두환이 골프를 치고 그도 모자라 현장에서 광주학살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는 이 나라 국민에게 망언을 쏟아냈다”고 규탄했다.
현재 경찰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두 전직 대통령 사저에 각각 경호 인력 5명과 경비 인력 80명을 배치하고 있다. 경호 인력은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를 경호하고 경비 인력은 사저 앞 집회나 시위 관리를 담당한다.
경찰은 법 개정 없이는 경호 인력을 더이상 축소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 인력은 지난 2017년까지는 10명이었으나 지난해 초 5명으로 줄었다. 경찰청 측은 같은날 “전씨에 대한 경호 인력은 전직 대통령 예우법에 의거한 최소한의 인력”이라며 “관련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만큼 입법 정책적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전씨 경호 인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전씨 골프 라운딩에) 경찰 경호인력 4명이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평소 근접 경호 인력은 5명이 있다. 사저 경비 의경은 연말까지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개정 전 대통령 경호법에 따라 대통령 퇴임 7년 뒤인 1995년과 1998년부터 경찰로부터 경호·경비를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7조 권리의 정지 및 제외 항목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경호와 경비는 예외다. 또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국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 예우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정해진 기한이 없는 셈이다.
지난해 전씨와 노 전 대통령 경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이 높아졌다. 지난해 5월 군인권센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등 시민단체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내란 수괴이자 헌정 질서를 짓밟은 두 대통령 사저 경호에 2018년 예산 기준 소요되는 비용이 총 9억여원”이라며 “권력 찬탈을 위해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살해한 이들을 혈세로 경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청원 글에는 국민 1만7000여명이 서명했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이철성 전 경찰청장은 “경호·경비 인력을 내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전히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법률에 보면 경호처에서 (대통령 퇴임 후) 최장 15년까지 (경호·경비를) 하고 이후에는 경찰에서 하게 돼 있다”면서 “관련 법안도 발의돼 있는 만큼 법 개정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경찰은 국회만 바라보고 있지만 법 개정은 요원하다. 손금주 무소속 의원은 지난해 1월 헌정질서 파괴범죄, 내란죄, 반란죄 등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경찰의 혈세 경호를 막는 ‘경찰관 집무집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13일 기준 여전히 소관위 접수 상태다.
탄핵을 당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전직 대통령에게 예우를 박탈하되 경호 및 경비를 예외로 규정하고 있는 부분을 삭제하자는 개정안(2016년 11월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 대표 발의)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이 개정안이 발의된 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소관위 접수, 계류 중이다.
장두영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유가족분들 모두 전씨 영상을 봤다”면서 “당신의 자식은 억울하게 숨진 뒤 제대로 유공자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자식을 죽인 이는 골프치고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우받는 모습을 보면 어느 부모 속에서 천불이 안 나겠나. 다만 이런 분노가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면역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직까지도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 소행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전두환 때가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분들도 분명 있다”면서 “정치권에서 여론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법안이 계속 계류 중인 점은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