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로 밀려난 관피아들이 다시 금융공기관을 장악하고 나섰다. 8개 금융공기관 가운데 현재 6개 기관장을 관료출신이 차지했으며, 그동안 내부출신이 행장을 맡아온 기업은행마저 관료출신 인사의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청와대의 무관심과 부족한 인재풀이 관피아의 득세를 불러온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8개 금융공공기관 가운데 6개 기관의 기관장이 관료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관료출신 기관장은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과 기업은행의 김도진 행장 등 두 명에 불과하다.
2014년 4월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되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정부의 미흡한 해양 안전·운항 관리가 원인으로 지적됐으며, 그 뒤에는 해양 안전·운항을 담당하는 산하기관 등에 관료출신 인사들이 대거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산하기관의 관리·감독 기능이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세월호 사고는 낙하산 관행 및 관피아 척결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관료출신 인사들의 전유물이었던 금융공공기관장에도 민간출신 인사들이 대거 진입했다. 2016년말 이동걸 전 회장(산업은행), 이덕훈 전 행장(수출입은행), 권선주 전 행장(기업은행), 김한철 전 이사장(기술보증기금), 황록 전 이사장(신용보증기금) 등 5명의 기관장이 민간출신 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관피아 척결 기조는 2016년 12월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현 자유한국당 대표)이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더욱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먼저 2017년 1월 기획재정부 출신 김규옥 전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기보 이사장이 민간출신에서 관료출신으로 변경됐다. 3월에는 기재부 출신 최종구 전 수출입은행장(전 금융위원장)의 취임으로 수출입은행장이 관료출신으로 전환됐고, 다음 해 6월에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민간출신에서 관료출신 윤대희 현 이사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8개 금융공기관 가운데 5명에 달하던 민간출신 기관장은 현재 2명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여기에 12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도진 기업은행장의 후임으로 또 다시 관료출신 인사가 거론되면서 민간출신 기관장은 1명으로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관료출신 차기 기업은행장으로는 정은보 한미 방위비협상 수석대표와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 부원장,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최희남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조전병조 전 KB증권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차기 기업은행장 인선에서 ‘낙하산 인사 배제’를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는 관료출신 금융기관장이 득세할 수 있었던 배경에 문재인 정부의 금융 무관심과 부족한 인재풀에 원인이 있다는 반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 등 사법개혁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금융분야는 소외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며 “여기에 인재풀이 부족한 데 이어 최저임금 인상 이후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관료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한편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물론 올해 연말까지 이병래 예탁결제원 사장과 문창용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의 임기도 종료된다. 관료출신 기관장을 두고 있는 두 기관장의 후임 역시 관료출신이 거론되고 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