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겨울왕국2’ 이현민 “안나 노래에 나도 위로받아”

[쿠키인터뷰] ‘겨울왕국2’ 이현민 “안나 노래에 나도 위로받아”

디즈니 최초 한국인 여성 슈퍼바이저

기사승인 2019-11-28 07:00:00

삶이 끝난 것처럼 세상이 어두울 때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짙은 슬픔이 발목을 붙잡아 자꾸만 주저앉게 만들 때, 우린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영화 ‘겨울왕국2’의 주인공 안나는 ‘나를 믿고,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숨을 크게 내쉬면서 한 걸음 더 가보겠다’며 두 다리에 힘을 준다. ‘겨울왕국2’ 속 안나의 주제곡 ‘더 넥스트 라잇 싱’(The Next Right Thing)의 내용이다.

안나 제작을 총괄한 이현민 슈퍼바이저는 ‘더 넥스트 라잇 싱’을 들으며 자신의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꿈을 지지해주던 어머니가 위암 투병 중 돌아가시고, 유학길에 오르며 남은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혼자 힘으로 딛고 일어나야 하는 안나의 상황이, 제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나게 했어요.” 26일 서울 새문안로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 슈퍼바이저가 들려준 얘기다.

“안나는 언제나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고, 위하는 캐릭터에요. 그런 그가 자신의 힘의 근원이 된 사람들을 잃었을 때, 어떻게 고난을 이겨내고 내면의 힘을 끌어내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슈퍼바이저는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를 졸업하고 2007년 디즈니에 발을 들여 12년 째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다.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1’, ‘주토피아’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겨울왕국2’에서는 안나를 디자인한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들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1편에서 애니메이터로 참여해 안나 캐릭터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맡았다가 “영화에 깊이 관여”하고 싶은 마음에 슈퍼바이저에 지원했다. 감독 및 헤드업 애니메이션과의 인터뷰를 거쳐 ‘디즈니 최초의 한국인 여성 슈퍼바이저’가 됐다.

“제 밝은 성격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감독과 헤드업 애니메이션이 당신의 어떤 면을 보고 안나 슈퍼바이저로 배정했다고 생각하냐’고 묻자, 이 슈퍼바이저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답했다. 대답은 겸손했지만 사실 그의 활약은 1편 때부터 대단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작업뿐 아니라 안나 캐릭터의 초기 디자인에도 관여했고, 슈퍼바이저들이 가장 ‘안나다운’ 표정을 고르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만큼, 이 슈퍼바이저에게 안나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됐다. “안나를 생각하면, ‘항상 건강해야 해. 어디서든 잘 살아!’하는 마음이 들어요. 1편에서 애틋하게 안나를 세상에 보냈는데, 2편 작업이 시작되면서 ‘안나가 다시 왔어!’라는 느낌도 들었죠. 헤헤.” 이 슈퍼바이저는 “우리(애니메이터)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게 우리의 성공”이라고 했다. 그래야 캐릭터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 숨쉰다고 느껴서다. 

“안나는 혼자서 씩씩하게 자라온 캐릭터잖아요. 1편에선 잃을 게 없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번 편에선 자신이 평생 기다려온 모든 것들을 갖게 됐어요. 행복하지만, 잃을 게 많아졌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걱정도 커진 상태죠. 안나의 밝은 모습을 유지하되, 걱정과 책임감이 많아진 모습, 깊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안나는 수많은 이들의 협업 끝에 탄생했다. 제니퍼 리·크리스 벅 감독이 만든 안나의 자아를 애니메이터들이 이어받아, 안나의 내면이 어떤 행동으로 발현될 것인가를 연구했다. 안나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틴 벨은 물론, 가족과 친구, 심지어 “슈퍼에서 본 이웃”에게서도 영감을 얻어 안나를 완성했다고 한다. 안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더욱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뮤지컬 배우와 보컬 코치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안나가 여러 사람에게 롤 모델이 된다니 기쁘다.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내면의 힘을 키워나가 결국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있을 텐데, 관객들이 안나를 보면서 힘을 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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