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미국에게 총선 전 북미회담을 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앞서 한 언론은 27일 오후 나 원내대표가 한국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미국 방문기간 중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를 만나 “총선 전 북미정상회담을 피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내용을 성과라며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에 정의당이 즉각 반응했다.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보도직후 긴급 브리핑을 갖고 “북미 대화는 한반도 평화를 판가름할 중차대한 사건이다. 가능한 빨리 이뤄져야 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서 “도저히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에는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만이 있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도대체 어느 나라 소속인가”라며 “고작 유리한 총선 구도를 위해 북미 대화를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하다니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제1야당의 원내대표 자격이 없다.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청와대도 나섰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국민의 안위와 관련된 일조차도 ‘정쟁의 도구’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나 원내대표의 머릿속에는 선거만 있고 국민과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이례적으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고 대변인 또 “자신의 발언이 외부에 알려지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해 하는 모습에 실망감을 넘어 분노와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 맞는지 묻고 있다”며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을 통해 “경악할 일”이라며 “자유한국당은 선거 승리라는 목표만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인가.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당인가. 국가와 민족앞에 통렬한 반성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나 원내대표는 2차례에 걸쳐 입장문을 내고 우려를 전달했을 뿐, 자제를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번 방미 면담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지난 7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을 때 총선 직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건 맞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번 3차 회담마저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정상회담의 취지마저 왜곡될 수 있다”며 “미 당국자에게 그러한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28일 오전에도 해명을 이어갔다. 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미국 당국자에게 의견을 전한 것을 두고 정치공세를 해오고 있다. 심지어 제1야당 원대를 향해 대한민국 국민이 맞느냐고 묻고 있다”면서 “꼼수를 부리려다가 허를 찔린 적반하장”이라고 이어진 비난을 오히려 비난했다.
나아가 “(나는) 남측 국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남측 국민으로서 굴종하고 침묵하지 않아서 배신감이 느껴졌나보다”면서 “미북정상회담은 오히려 우리가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하지만 그저 만남을 위한 이벤트성 만남은 안 되며 한심한 일은 반복돼서는 안 된다. 진짜 대한민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책무를 당연히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