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정국, ‘묘수’인가 ‘자충수’인가 [여의도 요지경]

필리버스터 정국, ‘묘수’인가 ‘자충수’인가 [여의도 요지경]

文의장, ‘필리 철회’-‘패트 상정보류’ 맞교환 불발에도 9일 본회의 강행 ‘천명’… 이목 집중

기사승인 2019-12-07 06:00:00

이번 주(12월 2~6일) 국회는 정기국회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법안처리를 하나도 하지 못한 ‘개점휴업’ 상태였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199개 법안 모두를 대상으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는 무제한 토론방식의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로, ‘다수결’ 원칙에 따른 의사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소수정당의 입장이 국회와 국민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국회 의사결정 과정의 최후 보완책이다.

이를 두고 보수성향의 정치평론가들은 ‘묘수’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4개 정당(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 1개 정치모임(대안신당)으로 구성된 ‘4+1 협의체’를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관련 법안들을 강행처리하려는 범여권의 의도를 한 수에 막았다는 평가다. 

민주당 관계자조차 “어떻게 풀어갈 방법이 없다”며 갑작스레 이뤄진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2019년 12월 6일 현재 총 295개 의석 중 108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자 집권여당인 민주당(129석) 다음으로 의석수가 많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내년 4월말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갈 수 있는데다 이를 막을 방안이 없어서다.

문제는 계류 중인 내년도 정부운영을 위한 예산안을 비롯해 각종 제도적·법률적 사각지대를 개선하고, 사회의 부조리나 제도의 지속가능성 등을 담보하는 등 국민생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민생법안’들이 필리버스터의 ‘볼모’로 잡혀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당을 제외한 여타 정당들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정치권은 필리버스터 정국이 이어진 이번 주 내내 한국당을 규탄하는 성명과 논평을 발표했다. 민생법안을 인질로 잡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는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가 취할 행동이 아니며, 그에 앞서 같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의조차 방기한 것이라고 비난과 지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도 극도로 악화됐다. 쿠키뉴스 의뢰로 조원씨앤아이(C&I)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선언을 한 다음날인 11월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전국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한국당의 지지율은 2주전 조사결과(34.5%)보다 6.6%p가 떨어진 27.9%로 집계됐다.

심지어 통칭 ‘어린이생명안전법’ 통과를 간절히 바랬던 어린이교통사고 피해가족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 채 눈물 흘리며 한국당을 비난했다. 한 피해가족은 “악마를 봤다. 어떻게 아이들 생명을 정치적 협상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냐”고 울부짖었다. 

또 다른 피해가족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나도 엄마라고. 어린이생명안전법(민식이법 등) 꼭 하겠다고, 목을 직접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용되고 있다고 느꼈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상황이 부정적으로 흘러가자 한국당은 ‘199개 상정법안이 아닌 5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만 인정해달라’, ‘야당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권한은 지켜달라’고 호소하며 악화되는 민심을 돌리려는 모습도 주 초에는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는 않고 있다.

국회의장과 여타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철회조건으로 내걸었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상정보류’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과 함께 필리버스터 철회 후 민생법안 우선처리를 합의하자며 회동을 요청했지만, 원내대표 교체를 이유로 나경원 원내대표가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 합의도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장은 현재 국회가 본연의 임무인 민생법안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개탄스럽다”며 “여야가 지금이라도 만나 하루속히 예산안과 민생법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머리 맞대고 지혜를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그간 여야합의를 계속 촉구해왔고, 합의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지만 9일과 10일 본회의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며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비롯해 패스트트랙 법안들까지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들을 직권상정해서라도 처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도 함께 전했다. 이에 9일 열리는 정기국회 본회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