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 소설가는 직업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대의 직업은 늘 가슴 뛰고, 하면 할수록 보람차고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 직업, 노동의 의미는 장애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위탁업체의 돈벌이로 흘러가는 장애인 일자리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장애인 채용’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방향성과 모범 사례 등을 함께 제시하려 합니다. 장애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함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사업무 담당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 4일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 해결책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글이 게재됐다. 전국장애인체육진흥회(진흥회) 관계자라 밝힌 글쓴이는 “장애인 선수는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다. 정해진 운동시설에서 근로를 운동으로 제공하며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한다”며 “고용부담금 납부 대신 장애인 체육 선수를 고용해 의무고용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게시글에는 “검토하겠다” “급여는 어떤 수준이냐” 등 댓글이 달렸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고용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자리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정부가 방관하는 사이, 장애인유료직업소개·위탁업체(소개·위탁업체)들은 ‘좋은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장애인고용법에 따르면 50명 이상의 근로자가 근무하는 공공기관은 전체 근로자의 3.4%를 장애인으로 의무고용해야 한다. 민간기업은 3.1%다. 이를 충족하지 못할 시 기업은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상시근로자가 120명인 민간기업의 경우, 의무고용 인원은 3명이다. 장애인 근로자를 한 명도 채용하지 않으면 매달 523만원(인당 174만원)에 달하는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근로자 관리·감독이 어렵다는 편견과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비용 등으로 인해 다수의 기업은 고용부담금 납부를 택하고 있다.
진흥회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채용 연계뿐만 아니라 위탁 업무까지 담당한다.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진흥회는 장애인 체육선수를 관리·감독한다는 명목으로 기업으로부터 매달 수수료를 받는다. 경증 선수 인당 10만원, 중증 선수 인당 30만원이다. 기업에 채용된 선수들은 기업의 마크를 달고 선수단으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진흥회를 통해 채용된 선수 중 일부는 지역 복지관, 체육관 또는 헬스장 등에서 운동을 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기업은 진흥회에 장애인 선수 관리를 일임하고 출퇴근 등의 보고를 받는 형태다.
최근 진흥회와 유사한 형태의 소개·위탁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체육선수뿐만 아니라 재택근무 장애인의 채용·관리감독을 맡기도 한다. 지난해 설립된 한 위탁업체는 관리비와 업무지원비, 이익준비금 명목으로 장애인근로자 1인당 월 50만원을 요구했다. 반면, 비용 산출내역상 장애인에게 돌아가는 월급은 월 94만9000원이다.
한 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소개·위탁업체가 지난 2017년 이후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며 “복지관으로 연락해 협업을 요구하거나 장애인 개인에게 접촉해 인력풀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해당 업체들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면밀히 뜯어보면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전문가는 업체들이 장애인 구인부터 근태·복무관리까지 모두 맡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파견’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관리비 명목의 수수료 또한 ‘중간착취’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희한한’ 형태의 사업장은 장애인고용법 취지와 거리가 멀다. 장애인고용법에는 ‘장애인이 그 능력에 맞는 직업생활을 통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제정된 법이 엉뚱하게도 일선 사기업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장애인을 사회와 단절시키는 고용 형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과도 어긋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제5차 장애인고용촉진 기본계획(2018~2022)’에 따르면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은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격차 해소를 통한 포용적 노동시장 구축”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문화 정착”이다.
소개·위탁업체들이 사업을 확장함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장애인들이다. 업체들이 알선하는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와 거리가 멀다. 언제 계약이 끝날지 모르는 기간제다. 또 임금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맞추는 수준이다. 근로시간 또한 단시간에 그친다. 일반적으로 월 88시간 근로하는 형태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발휘해 노동을 제공할 기회를 원천차단한다.
장애인 고용 환경의 질적 저하도 문제다. 지난 2017년 기준, 장애인들의 월평균 임금 수준은 전체 인구 평균 242.3만원보다 낮은 178만원에 불과하다. 전체 장애인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014년 58.5%, 2015년 58.2%, 2016년 61%, 2017년 59.4%, 2018년 59.4%로 5년째 절반을 넘는다.
다만 소개·위탁업체 측은 “위법성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진흥회 관계자는 “일자리에 대한 장애인 운동선수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장애인을 고립시키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정부는 소개·위탁업체들의 실태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또 명확한 위법이 아니라서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장애인고용공단 측은 “이런 업체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는 동향을 몰랐다”면서 “명백하게 위법 소지가 있다면 형사고발을 검토하겠지만 자칫 탁상공론으로 장애인 고용 창출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을 근로자나 동료가 아닌 ‘돈’으로 보는 인식이 고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소개·위탁 업체들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일자리는 많은데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장애인 노동 시장의 문제점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면서 연봉도 많이 받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동욱 한국복지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는 “장애인이니까 운동을 근로로 봐줘야 한다는 논리는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편견을 인정하는 꼴”이라면서 “정부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이용해 편법으로 돈벌이하는 업체들을 상대로 전수조사 등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기자 min@kukinews.com
사진=박효상, 박태현 기자 tin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