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 소설가는 직업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대의 직업은 늘 가슴 뛰고, 하면 할수록 보람차고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 직업, 노동의 의미는 장애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위탁업체의 돈벌이로 흘러가는 장애인 일자리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장애인 채용’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방향성과 모범 사례 등을 함께 제시하려 합니다. 장애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함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장애인 고용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고 있다. 차라리 고용부담금으로 ‘때우겠다’며 버티는 기업들은 줄지 않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고용 촉진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공공기관, 민간기업 사업주에게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미준수 시 부담금이 부과된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국가 및 지자체 3.4%, 민간 사업주 3.1%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장애인 고용률에 따른 부담기초액을 고용 의무 미달 인원 수만큼 곱해서 산정한다. 올해 장애인 1인당 부담기초액은 104만 8000원이다.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는 대기업은 몇 곳이나 될까. 지난해 기준 대우조선해양 단 한 곳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2018년 대기업집단 장애인의무고용 현황’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장애인 고용률 4.41%를 기록했다. 상위 30개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 평균은 2.14%에 그쳤다. 삼성전자, SK, GS, 한화는 2%대 조차 미치지 못했다.
100대 기업이 최근 5년간 고용부담금으로 납부한 금액은 총 650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501억으로 가장 많았다. 2위는 SK하이닉스(235억), 3위 대한항공(216억), 4위 국민은행(154억), 5위 LG전자(152억) 였다. 또 고용부담금은 매년 증가 추세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4년 1144억원, 2015년 1175억원, 2016년 1197억원, 2017년 1399억원, 지난해 1576억원이었다.
장애인 고용에 소극적인 것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62개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 장애인은 669명이다. 정규직 신규채용 총원 가운데 1.97%에 불과하다. 장애인 채용 비중은 최근 5년 동안 1%대에 머물렀다. 심지어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폴리텍(2.46%), 노사발전재단(2.4%), 한국잡월드(1.79%) 조차 의무고용비율 3.2%(지난해 기준)를 지키지 않아 빈축을 샀다.
‘구멍’은 왜 발생할까.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는 기업의 자산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같은 금액이라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느끼는 부담은 다르다. 중소기업의 경우, 고용부담금에 대한 압박으로 ‘형식적 일자리’라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대기업은 이러한 부담을 갖지 않고 돈으로 장애인 의무고용 문제를 해결한다.
의무고용률에 분야와 직업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불만이다. 3년 연속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에 이름을 올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직 특성상 실험 과정이 위험하거나 작은 오류조차 있어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연구소에서는 장시간 근로 가능한 분들이 필요하다. 장애인들은 근로 시간이 짧다는 것도 애로사항”이라고 밝혔다. 한 4년제 대학교 관계자는 “대학은 일반 사기업처럼 상시로 대규모 채용을 하지 않는다”면서 “전체 법인을 기준으로 의무고용 인원이 산정됐다. 모수가 너무 커진 것도 낮은 고용률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이렇게 거둬들인 고용부담금은 제대로 쓰이고 있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장애인고용촉진기금) 중 은행, 주식 등에 예치된 적립금은 지난해 결산 기준 9495억 7200만원이다. 올해 장애인고용촉진기금 예산현황에 따르면 금융기관 예치가 70%에 달한다. 적립금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 2017년 8796억원, 2016년 7645억원, 2015년 5649억원이다.
장애인 고용 증진을 위해 쓰이는 사업비는 적립금에 비해 적다. 적립금의 절반 수준만 예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는 2020년도 국회에서 확정된 장애인 고용 관련 예산은 5975억원이다. 올해 장애인 고용 증진 관련 예산으로 4142억이 책정됐다. 지난해에는 3000억원가량을 장애인 고용 증진 목적으로 지출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시행 중인 다른 선진국은 어떨까. 우리나라보다 의무고용률 적용 범위가 넓고, 기준도 높다.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는 기업에게 부담금을 가중하는 제도도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5~6% 수준이다. 20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특히 프랑스의 장애인고용부담금은 시간당 최저임금의 400~600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장애인 근로자를 한 명도 채용하지 않거나 3년 연속 장애인 사업장과 하청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기업의 부담금은 최저임금의 1500배로 증가한다.
고용노동부는 장애계 등의 비판을 수용, 장애인고용 정책 관련 법 개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대기업에 장애인 고용 관련 장기적·구체적 대안을 설계하게 하는 ‘고용개선계획’ 법안이 발의됐다”며 “직접고용이 어려울 경우, 자회사용 표준사업장을 출연해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역시 국회에 발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의무고용률 제고에 대해서는 “정부혁신평가 등에서 기타공공기관 등의 장애인 고용률이 지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반영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애인고용촉진기금 적립금 과다 지적에 대해 “장애인고용 사업비를 매년 1000억원씩 늘려왔다”면서 “장애인 고용이 늘어나면 자연히 적립금이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지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채용 정책의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우주형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교수는 “현재 장애인고용부담금은 최저 인건비 이하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 채용 인건비 보다 고용부담금을 내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면서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해서는 고용부담금을 높이거나 의무고용률을 올리는 등의 강제적인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괄적인 의무고용제가 아닌 맞춤형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며 “장애인의 근무가 용이한 직종인지 평가한 후 알맞은 업체에 더 높은 의무고용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