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 소설가는 직업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대의 직업은 늘 가슴 뛰고, 하면 할수록 보람차고 신나는 것이어야 한다” 직업, 노동의 의미는 장애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위탁업체의 돈벌이로 흘러가는 장애인 일자리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장애인 채용’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장애인 고용 정책의 방향성과 모범 사례 등을 함께 제시하려 합니다. 장애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이를 통해 자아를 실현함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꿈이 뭐예요?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심리상담사, 플루티스트, 사회복지사, 라이브 카페 운영, 점역사. 다양한 장래 희망이 쏟아졌다.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 중이라는 학생도 있다. 조금 먼 미래보다는 기말고사 성적에 대한 걱정이 더 큰 듯 보였다. 중학교 3학년 총원 7명, 작은 교실, 책상 위에 놓인 점역기(일반 문자를 점자로 바꿔주는 기기)를 제외하고는 비장애인교실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이 그리는 미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장애 학생들을 위한 진로교육이 활성화되며 학생들의 꿈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중학교 3학년 교실을 찾았다. 한빛맹학교에서는 현재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시험 없이 진로 탐색 교육을 받는 자유학년제를 운영 중이다.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에 다양한 직업군의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있다. 3D 프린터 전문가와 유튜브 크리에이터, 시각장애인 화가, 바리스타, 조향사, 보컬트레이너 등의 직업 활동을 직접 체험한다.
학생들의 호응은 높다. 이날 만난 시각장애 1급 권도연(15)양은 “직접 장비 또는 기구 등을 만져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며 “그냥 이야기로만 들으면 이해가 어렵지만 직접 해보니 확실히 달랐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진로도 점차 기존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학과 선택도 사회복지학과뿐만 아니라 통계학과, 세무회계학과, 문예창작학과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맹학교에서 필수로 여겨졌던 ‘이료수업(안마 등을 가르치는 과정)’은 현재 선택제로 운영된다.
꿈을 펼치기에는 아직 장애물이 많다. 현실이 학교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 채용을 위한 사회제도의 보장과 인식 변화는 아직 더디다. 변화가 없다면 특수학교의 진로교육은 빛을 볼 수 없다.
실제 취업의 벽을 마주하는 장애인들은 어떨까. 4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모(31·경기 성남)씨는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장 생산라인에서 근무했던 그는 사고 이후 내내 실직 상태다. 김씨는 휠체어를 타고 앉은 상태로도 일할 수 있는 업무에 지원했지만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는 대답을 번번이 들었다. 장애인이 지원했다고 욕을 하는 곳도 있었다.
김씨는 “정부나 기관의 도움을 받아보려 했지만 나와 맞는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적”이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건지, 새롭게 무엇을 배운다고 해서 취업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무력감을 토로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장애대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7년 기준 장애대학생 취업률은 35.33%로 비장애 대학생 취업률(약 70%)의 반토막 수준이다.
장애대학생들은 취업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지원자와 기업 간 의사소통 부재를 꼽았다. 채용 과정에서 시험 시간 연장 등이 가능한지 사전 안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혹시나 채용 과정에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이동섭(가명·23)씨는 “서류전형에서 통과한 뒤가 문제다. 속된 말로 ‘똥줄이 탄다’”며 “이후 절차를 어떤 식으로 준비하면 될지 기업에서 절대 먼저 연락을 주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문의를 위해 메일을 보내면 확인을 안 하고 전화를 하면 타부서로 ‘전화 넘기기’를 한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지원할 때마다 진이 다 빠진다”고 말했다.
변화가 더딘 사회 인식도 걸림돌이다. 이씨는 몇 달 전 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박람회에 참가했다가 황당한 말을 들었다. 컴퓨터공학 전공인 그가 한 대기업 계열사 인사담당자에게 개발자로 입사하고 싶다고 하자 “시각장애인은 안마사만 뽑는다”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장애인 일자리가 적은 수준은 아니지만 직업군이 한정 돼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마사, 사회복지사, 바리스타, 단순제조업 등의 직군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은 기간제이거나 최저임금을 주는 등 안정적 일자리와 거리가 멀다. 전체 장애인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 기준 59.4%다. 또 장애인의 평균임금은 2017년 기준 178만원이다. 전체 인구 평균은 242.3만원이다.
강동욱 한국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순히 장애인 취업박람회 몇 번 여는 것으로 ‘구색 맞추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정부는 장애인 일자리를 ‘투트랙’ 전략으로 갈 필요가 있다. 단순노무직뿐 아니라 고급 인력들이 종사할 수 있는 4차 산업, 전문직에 대해서도 장애인들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수미, 정진용, 이소연 기자 min@kukinews.com/ 사진=박효상, 박태현 기자 tin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