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극한대립 속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쟁점법안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동안 ‘유치원3법’, ‘데이터3법’, ‘해인이법’, ‘재윤이법’ 등 민생에 직결된 법안들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30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4개 안건만을 처리한 채 올해 국회 일정을 마무리했다. 공수처법과 함께 상정된 ‘유아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포함한 유치원3법조차 처리하지 않았다. 권력을 쥐고 흔드는 법안처리를 위해 여야가 다투는 동안 민생·경제법안은 뒷전으로 밀린 셈이다.
이와 관련 유치원3법을 발의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일 자신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유치원3법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어찌보면 어이없고 어찌보면 참담한 심정”이라며 “여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본회의가 정회됐고, 그렇게 끝이 났다”고 한탄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이 정쟁의 볼모로 유치원3법을 붙잡고 있는 탓도 크지만, 어른들의 관심사인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에만 몰두한 국회 모든 정치세력의 무책임한 태도도 이 사태에 한 몫하고 있다”며 “이렇게 유치원3법이 처리되지 못한 채 표류만 하다 폐기되는 것 아닌지 우려가 크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민생법안이다. 제발 통과를 위해 도와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에 한 네티즌은 “뭣이 중한지 모르는 국회와 정치판인 듯... 여전히 구태를 못 벗는 21세기 정치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만 하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더욱더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댓글을 통해 아쉬움과 당부의 말을 전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유치원3법은 선거법 공수처법보다 못 한 건가. 우선순위는 누가 매기냐”며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는 이도 있었다.
문제는 유치원3법 뿐 아니라 다수의 민생·경제 법안이 정치권의 정쟁과 권력쟁취를 위한 극한대립을 이어감에 따라 자동폐기라는 나락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이다. 실제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법안 중 ‘민식이법’과 달리 통과되지 못한 이른바 ‘해인이법’이나 의료기관에서의 사망 등 중대사고에 대한 의무보고를 규정한 일명 ‘재윤이법’은 본회의 문턱에 멈춰있다.
빅데이터 분석·이용 근거를 담은 데이터 3법은 혁신성장을 뒷받침하는 대표법안으로 꼽히는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의 개정안들로 구성된 통칭 ‘데이터3법’ 역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여기에 금융 상품에 대한 불완전 판매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금융소비자 보호법, 가상통화 취급 업소의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 체육 지도자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막기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등도 있다.
하지만 이들 민생·경제 법안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신청이 여전히 유효한데다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총사퇴를 결의하고 장외투쟁에 나서기로 해 오는 6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총선에 앞서 여·야합의가 전제돼야할 선거구획정이 또 하나의 장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정치인들의 권력싸움에 어린이와 환자, 서민과 중소·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더 이상 자신들의 이득과 이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태로 당장 필요한 민생법안이 뒷전으로 미뤄져선 안 될 것”이라며 “만약 이 같은 행태가 이어진다면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를 것”이라고 조속한 법안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