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 해를 맞았지만 우리 경제에 대한 전망은 어둡숩니다. 오히려 더 안좋아지는 추세기도 하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벌써 10개월째 경제에 대해 ‘부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KDI는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경기 상황을 ‘둔화’라고 평가했다가 4월부터 부진으로 변경했습니다. 어감이 주는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론 기관의 평가가 모든 경기체감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나라 경제가 살아나도 힘든 사람은 있고, 나라가 힘들어도 돈을 버는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사회의 모퉁이를 지탱해주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어떨까요.
지난해 12월 30일과 올해 1월 6일 각각 서울 두 곳의 시장을 찾았습니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가리봉동 시장과, 서울 성북구의 길음시장입니다. 두 곳의 상인 모두 ‘힘들었고,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아지길 바란다는 희망을 기대하기도 했죠.
먼저 찾은 곳은 가리봉종합시장입니다. 구로구에 위치한 이 곳은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중국 동포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연변거리와 닿아있는 곳이기도 하죠. 과거 구로공단 노동자들에게 저렴한 주거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쪽방인 벌집이 모여있는 이른바 ‘벌집촌’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시장과는 달리 지역 특성상 한자가 적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말보다는 중국말이 더 자주 들리기도 하네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고 사는 구성원인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찾았습니다.
해가 짧아지기는 했지만 오후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시장 가게들은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습니다. 정육점이나 채소가게 등은 아직 열려있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유일하게 사람이 몰리는 곳은 반찬가게입니다. 우리나라 철판 요리를 연상하면 쉬운데요. 철판에 고기와 죽순, 향채 등을 넣고 볶은 뒤 일회용 그릇에 담아 판매하는 곳입니다. 메뉴 역시 중국어 간체(简体)로 적혀있어서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20여분이 지나자 길게 서 있던 줄이 점차 줄어듭니다. 지난해 시장 경기는 어땠지, 앞으로는 어떨지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은 (가리봉시장에)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근처 사는 동포들이 많고 식품점 등이 이곳에 몰려있어서 수요는 늘 있다. 경기는 그저 그렇고 딱히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재개발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그때는 어려워질 것 같다”
확인해보니 가리봉동 인근 지역은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습니다. 최대의 동포상권인 만큼 일대 개발이 진행될 경우 동포 세입저와 건물주 간의 보상금 협상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1998년 이후부터 동포 밀집지역이었던 이곳은 각종 이권이 집중된 지역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따라서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작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의 상권은 그 특수성을 잃어버리고 해체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시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겠죠.
몇 군데 가게를 더 들렀지만 ‘모른다’고 손사레를 치거나 ‘나쁘다’고 짧게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시 30여분 가량 시장을 돌아다녔지만, 절반이 넘는 가게가 이미 문을 닫거나 닫으려는 상태였습니다. 오후 7시 30분을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시장 안을 조용합니다.
이날의 한파 만큼이나 그들의 주머니도 추웠던 것 같습니다.
열흘 가량이 흐른 지난 7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길음시장을 찾았습니다. 4호선 길음역 인근에 위치한 시장으로 주변에 길음 뉴타운과 주택단지가 있습니다.
이날은 퇴근시간에 맞춰 오후 6시 30분쯤 도착했습니다. 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퇴근 후 시장에서 장을 보고 귀가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시장은 너무나도 한산했습니다. 정육점 사장님은 추운 날임에도 밖에 나와 기자에게 ‘고기 보고 가라’고 호객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떡집, 횟집, 야채가게 등에도 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옷을 몇 겹을 껴입고 열풍기를 바짝 앉은 할머님이 도라지를 다듬고 계십니다. 할머니 발 둔치에는 빨간 고무 다라이에 도라지가 반쯤 차 있습니다. 시장 상황이 나아졌는지, 손님들은 많이 찾는지,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안 온다. 나이 든 사람들이나 와서 흥정이나 하면 다행이고. 젊은 사람들은 ‘저기’ 가는 통로로나 들리지 뭐 사러 오는 경우는 없다. 명절 대목이면 모를까. 그저 새해에는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할머님이 말씀하진 ‘저기’는 길음 뉴타운이 들어오면서 형성된 상업단지입니다. 본래 길음시장에서부터 이어지는 정릉1동 인근 지역이었으나 일부가 뉴타운에 포함되면서 입주민들을 위한 상가로 탈바꿈했습니다. 당연히 오래된 시장보다는 훨씬 깔끔하고 교통도 편리하며 편의시설들이 몰려있습니다. 인근에 사는 학생들이나 20·30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곳입니다. 각종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깔끔한 중소규모 마트, 호프집, 카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통로 쪽에서 옷·잡화 등을 판매하는 다른 어머님도 마찬가지입니다. 7시도 되지 않았는데 어머님은 퇴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옛날에야 시장 물건이 싸고 사람들도 장 보러 오는 길에 몸빼바지나 월남치마 사러왔지 요새는 많지 않다. 죄다 온라인으로 사지. 50·60대 나이 있으신 분들이나 사 가고 보통은 이 근처에 오래 살던 단골장사다. 그 사람들 떠나면 우리도 장사 어렵다. 젊은 사람들이 와야 시장이 사는데 누가 오겠나.”
패션과 잡화 판매상이 모여있는 시장 후문 쪽은 이미 어둡습니다. 그나마 어머님이 가장 늦게 퇴근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 사람이 붐볐던 곳은 길음시장의 핫플레이스인 순대타운입니다. 본래 시장에서 일하시거나 시장을 찾은 분들이 먹을 수 있게 순대와 내장, 순댓국을 판매하던 곳입니다. 마치 신림 순대타운처럼 긴 의자에 바(Bar) 형태로 둘러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몇 개의 가게가 뭉쳐 손님들에게 음식을 판매합니다. 어르신들은 약주도 곁들일 수 있죠. 순댓국 한 그릇에 5000원입니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4000원이었습니다. 백반 한 끼에 7000원을 훌쩍 넘어가는 요즈음의 물가를 볼 때 상당히 저렴합니다.
손님은 몰리지만 지속성은 아쉽습니다. 순댓국을 드시러 오시는 분들이 다른 소비를 해야 할텐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7시도 채 되지 않은 이 시간에 시장 절반의 불이 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온라인 시장의 득세와 마트·편의점의 확대’라는 뉴스 헤드라인. 그리고 한국 경제의 등락을 나타내는 그래프 등, 일반적으로 나쁘게 그려지는 상황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래도 사람 냄새가 있는 시장에 소비자들이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입니다.
그러나 날은 추웠고 현실도 차가웠습니다. 그래도 ‘새해에는 잘 풀렸으면 좋겠다’던 할머님의 기대감을 응원하게 됩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