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배드파더스 관계자 무죄…法 “공익성 인정”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 배드파더스 관계자 무죄…法 “공익성 인정”

기사승인 2020-01-15 09:28:24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배드파더스’ 관계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창열)는 15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55)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들의 사진과 이름, 직장 등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구씨는 해당 사이트 운영을 돕는 ‘자원활동’을 하며 고소인 등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양육비를 미지급한 전 부인 A씨의 신상을 배드파더스에 제공하고 관련 내용을 SNS에 게시, 비방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전모(32)씨에게는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문제 해결 방안이 강구되는 상황”이라며 “피고인의 활동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해당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14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구씨와 전씨 사건에 대한 변론이 이뤄졌다. 재판에 참여한 7명의 배심원은 15일 오전 0시를 넘겨 ‘배드파더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만장일치 평결을 내놨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평결을 고려,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씨가 배드파더스에 A씨의 정보를 제공한 것은 무죄이지만, SNS에 게시한 것은 유죄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구씨에게 벌금 300만원, 전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씨와 전씨의 변호인 측은 이날 재판에서 배드파더스가 공익 목적이었다는 점, ‘정당행위’였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다. 구씨 측은 “법원으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은 이들 중 20%만 실제로 양육비를 받았다”며 “양육비 이행 강제조치 및 미지급에 대한 제재가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드파더스를 통해 총 400여건 중 113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법원 판결문이 있는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제보만을 게시했으며 피고인은 어떠한 대가도 수령한 적 없다”고 설명했다. 전씨 측도 “자녀가 자해를 하는 등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A씨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며 “연락할 수 있는 창구는 SNS뿐이었다”고 해명했다.

검찰의 기소가 부적절하다는 언급도 있었다. 구씨 측 변호인은 “아동의 생존이라는 가치를 중시한 피고인의 선한 의도가 과연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배드파더스의 공익성을 인정해 불법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검에서도 같은 사건에 대해 ‘수사 및 소추할 공공의 이익이 극히 적다’고 불기소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검찰은 온라인상의 신상공개가 과하다고 봤다. 검찰 측은 “본 사건의 피해자는 공인이 아닌 사인이다. 피해자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공공성, 사회성을 갖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구씨가 별도의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터넷사이트에 실명과 사진 등을 공개한 점 등은 명예침해 정도가 과도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적이 정당해도 수단 방법이 적정했는지 따져야 한다”며 “이는 사적인 복수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배드파더스를 찾았던 여성의 호소도 법정에 울려 퍼졌다. 이날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선 손모씨는 “전 남편과 이혼을 하며 매월 60만원씩의 양육비를 받기로 했으나 지난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단 한 번도 지급받지 못했다”면서 “전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구걸을 하면 생각해보겠다. 이깟 종이(판결)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양육비 청구를 위해 이행명령, 채권추심, 압류, 감치 등 8번의 소송을 진행했지만 전혀 답이 없었다”면서 “배드파더스에 제보한 후인 지난해 6월부터 매달 10만원씩을 양육비로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 등 90여명이 재판정에서 변론을 지켜봤다. 일부는 증인신문과 피고인 신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회원들은 대부분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며 자녀를 키우고 있다.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자 5명은 지난 2018년 9월 구씨와 전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배드파더스는 지난 2018년 7월에 개설됐다. 사이트 운영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이트에는 현재 양육비 미지급자 100여명의 신상이 공개돼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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