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이틀 남겨둔 22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채소 가게에서는 가격 흥정이 한창이었다. 주부 신혜경(50)씨는 조그마한 무 하나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신씨는 “채소 가격이 너무 올랐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2000원까지 오른 무를 조금 깎아달라는 신씨의 말에 상인은 “여기가 그나마 싼 곳”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제 값을 다 받지 않고, 무 몇 개를 신 씨에게 건넸다.
남대문시장에서 17년째 채소가게를 하고 있는 윤모 씨는 “작년 장마와 냉해로 채소 작황이 썩 좋지 않았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날 한국물가정보(KPI)에 따르면, 주요 채소류의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통시장의 무 1개(2.5kg)의 가격은 2500원으로 지난해 1000원에서 무려 150%나 급등했다. 배추도 4500원으로 지난해 1포기(4kg) 2000원에서 125%가 올랐다. 오이, 고추, 애호박 등도 크게 뛰었다.
이외에도 수산물과 육류의 가격도 지난해 대비 많게는 몇 천 원씩 올랐다. 전통시장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갈치(43%), 오징어(40%), 고등어(25%) 등의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씨알이 굵은 생갈치는 500g 2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시장 수산골목에서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김영기(63‧가명) 씨는 “가격도 오르고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명절이라고 더 사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라며 “활기찬 겉모습과 달리 정작 장을 보는 사람은 얼마 없다”라고 푸념했다.
대형마트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인근 중구의 A 대형마트에서는 차례용품을 고르는 사람들의 카트가 비교적 많이 비어 있었다. 손님들은 세일이 진행 중인 과일이나 우유와 라면, 간편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을 주로 구입해 갔다. 정육 코너에서 만난 주부 이주희(45·가명)씨는 “저물가라고 하는데 전혀 와 닿지 않는다”라며 “기본 식재료와 가공식품 가격이 올라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최근 국민들이 주로 찾는 수입산 농·축·수산물 가격이 오른 것도 체감 물가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풀이된다. 이날 관세청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9일까지 평균 수입 가격을 지난해 1월 평균 가격(1kg당)과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축산물과 수산물에서는 냉동 삼겹살(20.6%), 냉동 닭다리(6.5%), 냉동 소갈비(4.8%), 냉동 꽁치(49.8%), 냉동 명태(43.2%), 냉동 고등어(7.2%) 등이 올랐다. 농산물에서는 냉장 호두(78%), 냉장 무(26.6%), 김치(24%), 냉동 마늘(22%) 등의 상승률이 높았다.
명절이 대목인 설 선물세트 코너 역시 비교적 한산했다. 햄, 참치, 샴푸 등 ‘실속’을 내세운 선물세트가 가득했지만. 고객의 손길은 좀처럼 닿지 않았다. 실속세트는 2~5만원선, 버섯, 인삼 등의 고가 선물세트는 10만원 이상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수의 손님들은 매장 직원들의 설명만 듣곤 등을 돌리기 다반사였다. 명절 선물 코너에서 만난 심성진(48)씨는 “조금 장을 봤는데 10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나왔다”면서 “벌이도 좋지 않아 선물 세트는 눈길도 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