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렇다’는 말을 잘 쓰지 않으려 한다. 원래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는 순간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들어설 수 없는 무기력함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득권층의 벽이 더욱 공고해질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엔 '원래 그런' 문화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전월세 거래에 있어 권력구도는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집주인이 갑이요, 세입자는 을이다. 세입자가 사회초년생이라면 갑과 을의 위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권력구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점은 바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계약서를 작성할 때 반드시 특약사항에 ‘계약금 반환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증금 10%에 해당하는 계약금까지 걸고 계약서를 썼는데 막상 대출심사를 해보니 건물에 문제가 있어 대출이 안 나오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조항을 넣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해당 조항을 넣길 꺼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건물에 문제가 있어 대출이 안 될 경우에도 말이다.
세입자는 결국 ‘계약금 반환 조항’이라는 안전장치 없이 이사날짜 한 달 전만을 기다린다. 통상 대출심사는 이사날짜 한 달 전부터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리 계약서를 작성해놓은 세입자는 불안하고 불안하다.
금액이 큰 전세계약을 한 사회초년생과 같은 세입자들의 불안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자금이 부족헤 대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대출심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경우 이들은 계약금 반환 조항이 없는 이상 집주인에게 허리 숙여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계약금을 돌려줄지 말지는 전적으로 집주인의 손에 달렸다. 이들 입장에서도 기존 세입자 이사날짜 등 시간,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부동산 거래는 갑을 관계가 공고해지면서 ‘원래 그런 시장’이 되어버린다. ‘건물로 인해 전세자금대출이 안될 시, 계약금 전액(중도금 포함)을 반환키로 한다’라는 특약은 거래 행위 시 요구되는 세입자의 당연한 권리다. 공정과 혁신이란 원래 그러했던 기존 관습을 깨부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그럼 욕망만이 들끓고 있는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도 상생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