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장사 안돼 죽을 지경인데 멧돼지를 파냐고? 냉장고만 자꾸 뒤지고…그냥 죽고 싶다!”
서울시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대림중앙시장(대림시장)에 대한 대대적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커진 외국 식료품에 대한 시민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오히려 중국 동포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악재’를 이겨내려 애쓰는 상인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는 5일 외국인 밀집지역인 3개 시장 ▴영등포구 대림시장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진구 조양시장 내 외국 식료품 판매업소(81개소) 및 주변 음식점(일반음식점 721개소)을 대상으로 합동 점검 및 홍보에 나섰다. 시, 민생사법경찰단, 자치구, 소비자식품위생감시원, 상인회 등 총 75명이 투입됐다.
신종 코로나 중간 숙주 동물로 박쥐류와 뱀류 등 야생동물이 유력하게 지목됐다. 중국 식문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자 이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시가 밝힌 주요 점검 사항은 ▴ 박쥐, 뱀, 너구리같이 법이 금지한 식용불가 등 불법 야생동물 취급 여부 ▴업소 내 조리실 등 위생적 관리 ▴식품 등 위생적 취급기준 준수 ▴무신고(무등록)영업 또는 무표시 제품 사용 등이다.
시의 합동점검을 한시간 여 앞둔 이날 오후 1시. 대림시장은 조용했다. 가게 문 앞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일제히 질병관리본부에서 배포한 ‘신종 코로나 예방행동수칙’ 포스터가 일제히 붙었다.
상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휴업을 한 곳도 있었다. 음식점 3~4곳은 신종 코로나로 인해 임시 휴업을 한다고 써 붙였다.
그러나 대림시장에서 야생동물이나 불법 식재료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지역 시장에서 파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송화단(숙성한 오리알), 오리알, 건두부 등 중국 식재료가 눈에 띄었다. 이건 어떤 고기일까 궁금증이 든 식재료도 돼지 심장, 허파 혹은 오리 머리 수준이었다.
오후 1시40분. 대림시장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시 관계자와 언론매체들이 많이 오는 만큼 상인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상품들을 깔끔히 진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침과 가래를 길바닥에 뱉지 말아 달라는 당부도 두 번이나 나왔다.
이날 오후 2시 대림시장에서 이뤄진 합동점검은 공무원 3~4명씩 8개조로 나눠 각자 구역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무원은 30여 명이 참석했다. 또 합동점검에 참여하는 인원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취재진도 인원을 나눠 단속 현장에 따라붙었다.
현장 점검에 동행해보니 사실상 단속보다 계도에 가까웠다. 공무원과 카메라를 든 취재진이 가게에 들이닥치자 상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카메라를 들이밀자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상인들이 반기는 것은 공무원이 공짜로 나눠주는 손 소독제 뿐이었다.
야채 가게에 들어선 공무원이 “신종 코로나가 우려되기 때문에 야생동물을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안내하자 “우리는 그런 거 안 판다. 주로 취급하는 건 양파와 호박”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송에 나갈 ‘그림’을 위해 공무원이 냉장고를 재차 열어 야채 박스를 뒤지자 상인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고기가 어느 부위냐”고 공무원이 물어도 직원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한 상인은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어려운 데 장사를 망칠 작정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림시장 내 잡화점의 주인은 “’죽네 마네’ 하는 판국에 멧돼지를 자꾸 파냐고 물어본다. 우리는 그런 거 안 판다”면서 “기자고 공무원이고 자꾸 냉장고를 들여다보는데 마음 같아서는 냉장고를 부숴버리고 싶다. 차라리 내가 죽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시의 대대적 현장 점검이 오히려 상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꽈배기 가게에서 만난 한 중국 동포는 “대림시장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박쥐, 오소리, 사향 고양이 파는 가게는 못 봤다”면서 “안 그래도 소문이 안 좋은데 자꾸 언론에 보도되면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공무원 30여 명이 투입된 현장점검 결과물은 냉동 가재 1kg(민물가재·자숙)이었다. 한 중국 식품 판매점 냉동고에서 적발됐다. 위반 사안은 2건이다. 냉동가재가 중량·유통기한을 미표시한 점, 그리고 무표시 제품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시는 대림시장에 식용불가 등 불법 야생동물 취급 업소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시는 현장 점검 사전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명시하고 “보다 철저한 추가 점검에 나서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시 시민건강국 식품정책과 관계자는 “지난주에도 점검을 실시해 적발 건수가 적은 것 같다”면서 “이날 현장점검은 단속이 아닌 홍보가 위주”라고 밝혔다.
이어 시의 현장점검이 편견을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같은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대림시장이 비위생적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다 보니 관할 행정처 입장에서 여론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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