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이 신곡 ‘온’(ON)으로 미국 빌보드의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에서 4위를 차지했다. 지난 음반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로 세웠던 자체 최고 기록(8위)를 경신한 것이자, K팝 그룹 사상 최고 순위다. 2018년 발표한 ‘페이크 러브’(FAKE LOVE·10위)까지 포함하면, 방탄소년단은 핫100 10위 이내 진입곡을 세 곡 보유하게 됐다.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이다.
핫100은 라디오 방송 횟수와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실적 및 판매량을 종합해 순위를 매긴다. 라디오 방송이 불리한, 방탄소년단 같은 외국 가수들에겐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핸디캡을 높은 음원 판매량과 스트리밍 성적으로 이겨냈다. 빌보드에 따르면 ‘온’은 발매 이후 일주일간 8만6000건 다운로드돼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주간 판매량으로는 방탄소년단의 자체 최다 기록이자, 미국 시장을 통틀어서도 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해 5월 낸 ‘미!’(Me!) 이후 가장 많은 판매량이다. ‘온’의 일주일간 스트리밍 횟수는 1830만 건으로 같은 기간 집계된 노래들 가운데 12번째로 많다.
‘온’ 외에도 새 음반 ‘맵 오브 더 소울: 7’(MAP OF THE SOUL: 7)에 실린 정국 솔로곡 ‘시차’(My Time)가 84위, 지민 솔로곡 ‘필터’(Filter)가 87위로 핫100 차트에 데뷔했다. 이로써 방탄소년단이 핫100에 랭크 시킨 곡은 한국 가수 최다인 11곡으로 늘었다. ‘온’,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페이크 러브’ 외에도 ‘아이돌’(IDOL·11위), ‘마이크 드롭 리믹스’(MIC Drop Remix·28위), ‘블랙 스완’(Black Swan·57위)이 핫100에 진입한 바 있다.
이것은 물론 방탄소년단의 높아진 미국 내 위상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팬들의 자발적인 소비가 전통적인 미디어의 힘을 압도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저서 ‘BTS: 더 리뷰’(BTS: The Review)를 펴낸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SNS를 통해 “라디오는 미국의 메인스트림 음악산업이 그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장벽”이라면서 “BTS의 빌보드 핫100 차트 4위 데뷔는 메인스트림 라디오의 수혜를 입지 않고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다양한 방송국이 있지만 영향력을 가진 곳들이 선곡하는 곡들의 수는 매우 한정적이며, 일 년 내내 사실상 같은 플레이리스트가 반복적으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강요하는 시스템”이라면서 “미국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BTS의 성공은 단순히 ‘히트’가 아니라 외국 아티스트의 음악을 지지하는 현지 팬들이 각별한 열정과 단결된 힘으로 시스템의 장벽을 허문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빌보드 메인 음반차트(빌보드200)에선, 일찍부터 방탄소년단의 1위 행진이 이어져 왔다. 방탄소년단은 ‘맵 오브 더 소울: 7’(MAP OF THE SOUL: 7)을 포함해 2년간 발매한 4장의 음반을 빌보드200 1위에 올려놨는데, 그룹으로서는 비틀즈 이후 52년 만에 이룬 쾌거다. 심지어 ‘맵 오브 더 소울: 7’의 첫 주 판매량은 같은 기간 빌보드200에서 2~6위 팀의 판매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고 전해졌다. 미국 포브스는 방탄소년단의 네 번째 빌보드200 1위를 알리면서 “이것은 방탄소년단만의 승리일 뿐 아니라, 기성 팝 위계를 격파하는 것이자, 세력교체의 신호”라고 짚었다.
방탄소년단이 커리어 사상 가장 높은 기록들을 연일 만들어내면서, 이르지만 내년 그래미 입성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그래미는 지난해 방탄소년단을 시상자로 올해는 퍼포먼서로 초대한 바 있다. 이는 방탄소년단이 그래미로부터 ‘인정받았다’기보단, 그래미가 방탄소년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더욱 타당하다. 이젠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전 세계에서 얼마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느냐 만큼이나, 이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그들이 어떤 흐름을 만들고 있느냐에 주목해서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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