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여성가족부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이 3년째 제자리다. 제도권 밖의 비혼·동거 가정은 기본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가부가 올해 주요 정책 목표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내놨다.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2020년도 업무보고에서 여가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법 개정을 통해 혼인이나 부모·자녀 관계 외의 다양한 가족을 제도적으로 포용하고, 이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도 제고하겠다는 목표다.
그런데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추진은 3년째 되풀이될뿐 진전이 되지 않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도 건강가정기본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여가부는 가족의 구성방식을 혼인·혈연·입양으로 규정한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 ‘사실혼’을 추가해, 비혼·동거 가정도 가족 범주에 포함해 제도적으로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업무보고에서도 여가부는 비혼·동거 가구 등 다양한 가족들의 삶의 질을 제고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도 지난 2018년 2개가 전부다. 전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의 법안은 3주 만에 철회됐고,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지난해에는 비혼·동거 가정의 제도적 인정과 관련해 발의된 개정안이 없었다. 총 6건의 개정안은 ▲건강가정지원센터 운영 강화 ▲모성보호알리미 서비스 홍보 ▲국어사전 ‘우리말샘’ 내용 수정 ▲가족정책 운영 체계 개편 등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법 개정에 진척이 없는 동안 비혼·동거 가정들은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동·복지·보건 영역 상근활동가는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정책은 모두 혼인신고를 한 부부 중심으로 설계됐다”며 “정부가 이른바 ‘정상가족’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주거지원, 기초생활보장지원 등 혜택을 비혼·동거 가정은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혜택뿐 아니라 가족으로서 서로에게 가져야 할 기본적 권리조차 얻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사실혼 관계인 비혼 부부는 배우자가 응급 수술이 필요할 때,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한다. 또 비혼 부부는 서로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전무하다. 비혼 부부가 사별하면, 부부가 함께 일군 재산의 상속권은 사망한 배우자의 호적상 가족에게 돌아간다.
김권영 여가부 가족정책관 국장은 “개정안의 명칭에서부터 의견 조율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개정안은 다양한 가족을 제도적으로 보호한다는 취지”라며 “이를 반영하려면 우선 법률 명칭부터 ‘가족정책’지원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여가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에서는 기존의 ‘건강가정’지원법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자 하는 의견이 강해, 개정안이 관철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법 개정이 더딘 상황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올해는 국회를 설득할 전략을 고안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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