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쿡] 국민 쏜 개혁화살, 여·야 누구도 안심 못해

[총선 쿡] 국민 쏜 개혁화살, 여·야 누구도 안심 못해

기사승인 2020-04-07 05:00:00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지난해 말, 국민MC 유재석이 가수 ‘유산슬’로 데뷔해 전국을 흔들었던 노래가사다. 미래통합당은 ‘정권심판’을 내세우며 연일 정부와 집권여당을 압박하는 그들의 심정을 십분 반영했다며 선거송 선정목록 상위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저작권자의 승인여부에 앞서 선정목록에서 해당 곡이 제외됐다. 역풍을 우려한 결정이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통합당의 판단은 적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과 3월, 4·15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파악하려 수도권 격전지를 돌며 마주한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이었다. 그리고 21대 국회를 새롭게 구성하길 원한다며 ‘갈아엎어 달라’고 호소한 국민들의 시선 끝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정치권’이 자리하고 있었다.

◆ 투표, 하는 혹은 하지 않는 이유… ‘정치의 후진성’ =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미래통합당 후보)와 이수진 전 부장판사(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동작을 지역구에서 만난 한 20대 남성(대학생)은 “정치에 원래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정치 관련 뉴스가 많이 뜨는 걸 보면서 올바른 투표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하는 일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흑석동에 거주한다는 65세 여성(주부)은 “후보도, 공약도 아직은 모른다. 찍으려고 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찍어줘도 다 똑같으니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화양동에 산다는 스타트업 대표(남·30대)는 “국민의 의무이자 정치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에 선거를 한다. 하지만 차악을 뽑는 느낌”이라는 아득함을 전하기도 했다.

일산동구 식사동에 거주하며 20여년간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60대 초반 여성은 “수십년간 선거를 했지만 누굴 뽑든 달라지지 않았다. 다들 자기 기득권 챙기기에 바쁘고, 싸움과 반목만 일삼았다. 다 똑같은 정치인들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면서 “앞으로도 선거는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정치권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문제는 정치권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이 만연하단 점이다. 거리를 돌며 마주한 150여명의 시민들 중 절반가량은 스타트업 대표와 같은 반응이었다. 심지어 이들 중 10% 이상은 ‘환멸’과 ‘경멸’ 등 극단적 반응을 보이며 거친 말들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식사동 소재 식당 여주인처럼 대안이 없다며 선거를 포기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밖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겠다는 이들도, 특정 후보를 찍겠다는 이들도, 당초 자신의 신념과 지지와 같은 또는 다른 결정을 하겠다는 이들도, 모두의 마음속에는 방향성이나 판단에서 일부 차이는 있었지만 “정치를 바꿔야한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었다. 나라가, 지역이, 국민이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의 정치적 후진성을 탈피해야한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 3무(無) 선거 전락 ‘우려’… 전문가들, ‘최악의 국회’ 탄생예고도 = 그러나 국민들의 정치권을 향한 극단적 불신과 혐오가 총선을 통해 해소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들이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번 총선을 거치며 국민들의 정치혐오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도 심심찮게 내놨다. 염치도, 인물도, 공약도 없는 극단적 이념대결 끝에 구성될 21대 국회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은 수준이란 평가다.

이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21대 총선은 3가지가 없는 ‘3무(無) 선거’다. 비례위성정당까지 출현시킨 거대양당의 행태에 ‘염치’가 없고, 늦장 선거구 획정에 공천파동까지 유발하며 ‘인물검증’이나 ‘혁신인사’가 실종됐으며, 정치적 이기심만 남아 정쟁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공약’은 사라져버린 선거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나아가 현장에서 전해진 ‘바꿔보자’는 민심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흐름을 읽은 결과이며, 개인의 정치적 이념을 떠나 정치권 전반을 향해 국민들이 느끼는 불편한 심기의 표출이라고 진단했다. 대안 없는 후보와 공약 없이 진영 간 대결구도로 고착된 선거판에 대한 회의가 개혁의지로 드러난 결과라는 풀이다.

실제 정치평론가이자 정치컨설팅기관 인사이트케이의 수장인 배종찬 소장은 “이번 선거는 정치권을 심판하겠다는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면서도 “유권자들은 먹기 싫은 반찬만 놓인 밥상에서 마지못해 밥을 먹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 심판을 위한 유권자들의 시도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유권자들에겐 사라진 선택지와 극단적 이념대결구도로 점철된 선거판에서 최선이 아닌 차악을 강요당하며, 이렇게 구성된 21대 국회는 20대 국회가 받은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일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차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라는 대결국면이 이어져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며 극한 대립만 연출할 것이란 관측도 더했다.

한편 배 소장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그는 “4·15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진영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며 “내편 네편이 아닌 지역의 발전과 인물의 실천력, 신뢰성을 가장 우선해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후보들이 내놓은 대표공약을 비교하고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일인지, 과연 후보가 내놓은 공약을 스스로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덧붙여 그는 정치개혁을 국회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직접 요구하고 감시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절실하다는 개인적 바람까지 함께 전했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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