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굿 걸’③] ‘안녕 쟈기’부터 ‘나는 이영지’까지, ‘굿 걸’의 가사들

[오 마이 ‘굿 걸’③] ‘안녕 쟈기’부터 ‘나는 이영지’까지, ‘굿 걸’의 가사들

[오 마이 ‘굿걸’③] ‘안녕 쟈기’부터 ‘나는 이영지’까지, ‘굿걸’의 가사들

기사승인 2020-06-18 08: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Mnet ‘굿 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의 ‘굿 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기록으로 남겨둬야 마땅한 ‘굿 걸’의 가사들.

■ “딱딱해 딱딱해 나의 야망이 딱딱해”

“엉덩이와 초록색밖에 기억에 남지 않을 무대.” ‘신토부티’(신토bOOty)를 들은 이영지의 이 말은 사실 퀸 와사비의 어떤 무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랩 실력은 다소 어설퍼도 엉덩이 하나만으로 무대를 평정해 버리는 퀸 와사비의 기세는 숫제 통쾌하기까지 하다. 엿보는 엉덩이가 아닌 보여주는 엉덩이, 그리고 그 앞에서 눈을 돌린 채 아연실색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엉덩이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거대한 쇼 같다. 밑도 끝도 없이 엉덩이로 얘기하는 퀸 와사비의 무대와 이에 아연실색하는 관객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엉덩이란 무엇인가’라는 우스꽝스럽고도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노골적으로 섹스를 비유하는 가사는 또 어떤가. 그간 다른 힙합 음악에서 숱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던 여성이 저속할 정도의 표현으로 성욕의 주체가 돼 남성을 정복하는 순간, 이 땅의 ‘유교걸’들은 경악하면서도 환호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안녕 쟈기’에 등장하는 “딱딱해 딱딱해 / 나의 야망이 딱딱해”라는 구절이 아닐까. 자신의 야망을 남근에 빗댄 이 괴상함, 이 과격함! 참고로 ‘안녕 쟈기’와 리믹스해서 들려준 ‘룩 앳 마이!’(Look At My!)에서는 남근을 ‘골프공 올려서 치는 받침대 역할’로 정의한다. 이보다 확실한 거세가 또 있을까.

■ “누가 알려준 대로가 아닌 진짜 나로만”

세우가 프로듀싱하고 존오버와 릴 타치가 부른 ‘디몬스’(Demons)는 ‘잘나가는 나’를 악마에 비유하는 자의식 과잉을 보여준다. 반면 이들과 경쟁한 슬릭·윤훼이·제이미의 ‘컬러스’(Colors)는 “누가 알려준 대로가 아닌 진짜 나로만” 존재하려는 열망을 교실 속 청소년의 모습을 빌려 들려준다. 전자가 여성의 신체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한국 남자 힙합의 전형이라면, 후자는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돼 끊임없이 오지랖과 검열을 맞닥뜨려야 하는 한국 여자들의 현실에 가깝다. ‘진정한 내가 돼라’는 자아 찾기 메시지는 이미 흔하지만, 슬릭의 랩(“내 발바닥으로 바닥을 밟아 보고 나서 / 그럼 안 된다는 건 내가 하고 나서 알고파 / 다 내가 하고 난 그 느낌은 / 누가 못 알려주니까”)은 이들이 어떻게 ‘진정한 나’가 될 것인지를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전달하며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또한 “누가 알려준 대로가 아닌 진짜 나로만” 존재하는 여성 뮤지션들을 조명한 것은 ‘굿 걸’의 가장 큰 성취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여성들, 오직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여성들이 더욱 많이 비춰질수록, 우리는 더욱 다양한 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나는 이.영.지.”

이영지는 이영지다. 2년 전 Mnet ‘고등래퍼3’에 함께 출연했던 강현준이 릴 타치가 되고 김민규는 영케이가 됐지만, 이영지는 여전히 이영지다. 이영지는 ‘고등래퍼3’ 우승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랩 네임을 짓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대체할 수 있는 예명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이런 그에게 “나는 이영지”라는 훅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자기 과시다. 물론 이영지도 처음 더콰이엇에게 이 가사를 제안받았을 땐 “부끄럽고 낯간지럽다”며 망설였다. 하지만 파워풀한 랩으로 순식간에 관객을 압도하는 그에겐 긴말보단 이름 석 자를 외치는 게 더욱 효과적이고 파괴력 있는 어필이 된다. “뛰는 놈 위의 / 나는 놈 위의 / 길이 보이는 / 나는 이영지”라는 가사는 또 어떤가. 흡사 ‘기리보이 위의 나는 이영지’처럼 들리는 이 랩은 경쟁 상대였던 기리보이를 제압하는 통쾌한 펀치라인을 보여준다. ‘이영지’라는 이름을 ‘최고’의 동의어로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이미 수많은 남성 래퍼들이 자신은 물론 동료, 소속 레이블의 이름을 권위의 근거인 양 들먹이고 있지 않나. 그러니 이영지를 포함한 여성 뮤지션들에게 바라건대, 겸손일랑 접어두고 자신의 멋짐을 마음껏 펼쳐 보이길.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Mnet ‘굿 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 방송화면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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