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반도’③] 상식이 윤리를 담보하지 않는 세계

[웰컴 투 ‘반도’③] 상식이 윤리를 담보하지 않는 세계

‘반도’, 상식이 윤리를 담보하지 않는 세계

기사승인 2020-07-15 08:01:20
▲ 영화 ‘반도’ 보도 사진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 ‘반도’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4년 전, 좀비 습격을 피해 도망 나온 이들을 실은 탈출선. 승객들이 몸을 누인 객실 한 칸에서 좀비가 발생한다. 정석(강동원)은 누나(장소연)가 좀비의 습격을 받을 걸 알고도 객실 문을 닫고 바깥으로 탈출한다. 훗날 그와 함께 살아남은 매형 철민(김도윤)이 왜 자신도 함께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냐며 원망하자, 정석은 이렇게 답한다. “그때 내가 안 그랬으면, 배에 있던 사람들 다 죽었어. 안 그래? 그렇잖아, 상식적으로.” 15일 개봉하는 영화 ‘반도’(감독 연상호)의 이야기다.

좀비 창궐 이후의 ‘뉴 노멀’ 시대, 세계의 ‘상식’은 흔들린다.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한국은 이제 이름 대신 ‘반도’라고 불린다. 폐허가 된 그곳에선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도 바깥에서는 한국인을 배척하는 것이 상식이 된다. 탈출선에서 좀비가 발생하자 세계 각국은 한국인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혹시 모를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반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와 맞물려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반도를 둘러싼 각자의 상식은 과연 윤리를 담보하고 있을까. 상식적인 선택은 반드시 윤리적인 선택이기도 할까.

▲ 영화 ‘반도’ 보도 사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누나를 죽음 속에 내버려둔 과거를 자책하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정석은 좀비 떼와 631부대의 공경게 맞서 철민을 구한다. 이것은 상식적·이성적인 행동은 아닐지언정,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불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숭고하고 이타적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631부대와 달리, 여성·아이·노인 등 사회적 약자로 구성된 민정(이정현)의 가족은 서로 연대한다. 또한 이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이 각자도생하는 것보다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생존을 통해 증명해낸다.

그리고 631부대가 있다. 이들은 거리에서 ‘들개’들을 잡아다 자신들의 놀잇감으로 삼는, 인간성을 말살당한 존재다. 표현이 피동형인 건 이들이 처음부터 ‘괴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정은 631부대가 원래는 생존자를 구출·보호하던 부대였으나, 외부로부터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이 계속해서 좌절당하자 “미친 놈들”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631부대도 좀비 창궐이라는 비극의 피해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인도주의를 실현해야 할 공적 시스템의 붕괴는 인간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끌어내릴 수 있음을 ‘반도’는 보여준다.

살아남은 이들을 구조하는 이가 애초 반도행을 제안하며 탈출을 약속했던 범죄조직이 아닌, 국제연합(UN)이라는 결말은 필연적이면서도 당위적이다. 인류보편의 가치에 대한 공공의 합의가 무너진 세상은 다른 의미에서 ‘지옥’일 것이기 때문이요, 희망은 영웅적 개인이 아닌 윤리적 시스템에 의해 지켜질 때 다음 세대로도 대물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반도’를 만들며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다고 한다. 이제 질문은 ‘반도’ 밖 세상을 향한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인간성을 지킬 것인가. 역병으로 혐오와 배제가 요동치는 이 시국, 가장 뜨겁고도 시의적절한 질문이다.

wild37@kukinews.com / 사진=NEW제공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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