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1세대 비혼주의자 김애순 선생은 말한다. 비혼의 실천은 첫째도 경제력, 둘째도 경제력이라고. 부자이거나 엘리트 전문직이거나 하다못해 복권에 당첨돼야 비혼으로 살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비혼을 실천하기 위해 경제적 독립은 필수다. KBS2 ‘그놈이 그놈이다’의 서현주(황정음)는 6년차 웹툰 기획 PD로, 상반기 인기 웹툰 설문에서 자신이 담당한 웹툰 5편을 10위 안에 올렸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tvN ‘오 마이 베이비’의 장하리(장나라) 역시 사회에서 ‘커리어우먼’으로 통한다. 그는 육아지 ‘더 베이비’에서 일하며 회사의 2인자이자 실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직장을 잃거나 보직이 변경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장하리가 자신의 부당 전보에 반발하자 그의 상사는 “광고매출 또 떨어지면 장 차장 아니면 날 자르겠다는데 어쩌냐. 난 가장인데”라고 변명한다. 장하리 역시 자신 몫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이지만, ‘가장’이라는 지위는 여전히 유자녀 기혼 가정의 남성에게만 부여되고 있다. 실제로 비혼 여성의 경우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와 4인 가구 중심의 복지 제도로 이중고를 겪는다. 비혼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는 임금 구조와 복지 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 오지랖에 기죽지 않기
한국 사회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이거나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결혼 이전 단계’의 불완전한 상태 혹은 불완전한 존재로 간주한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은 언젠가 결혼할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 ‘미혼’이었음을 생각해보라. 비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가족, 친구, 직장 상사, 하여튼 자신이 아는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빙자한 오지랖을 견뎌야 하는 것이 비혼주의자의 숙명일지니. 타인의 무례함에 반격할 몇 가지 레퍼토리를 소개한다. 1. ‘그놈이 그놈이다’의 서현주처럼 우아하게 설득하기. 예시: “남편 말고 나 자신을 내조하려고요. 자식 말고 내 꿈에 희생하면서, 평생 사랑할 사람 찾아 헤매는 대신,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랑 동고동락하면서 살아보려고요.” 2. KBS2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혜영(이유리)처럼 날카롭게 일침 놓기. 예시: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자한테 아주 불리해. 한국에서 며느리는 카스트 제도에서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야.” 3. 김숙처럼 되로 받고 말로 주기. 예시: (명절 때 만난 사촌 언니가 ‘시집 언제 갈 거니?’라고 묻자) “언니처럼 살 까봐 못 가겠어.”
■ 관계 속의 존재로 살아가기
MBC ‘나 혼자 산다’는 황지영 PD가 연출을 맡기 시작한 2016년 10월을 기점으로 출연자들 간의 관계에 집중해왔다. 이들의 관계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담당하는 중요한 축이 됐고, ‘세 얼간이’(이시언·기안84·헨리), ‘여은파’(한혜진·박나래·화사) 등의 모임도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프로그램 제목을 ‘다 같이 산다’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왔지만, 황 PD는 언론 인터뷰에서 “5∼6년 전보다 1인 가구가 흔해졌고, 혼자 살지만 뜻 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취향을 공유하는 모임도 많아졌다. 시대가 변한 것 같다”고 짚었다. 한편 이달 초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한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이혼과 사별로 결혼생활을 종료한 박원숙·김영란·혜은이·문숙의 동고동락을 보여준다. 이들은 함께 살림을 꾸리며 요리를 해 먹기도 하고, 계곡 근처에서 도시락을 풀어 먹다가 돌바닥에 벌렁 드러눕기도 하며 우정을 쌓는다. 요컨대 비혼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안적 공동체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관계 속의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wild37@kukinews.com / 사진=KBS2 ‘그놈이 그놈이다’,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