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계열사 부당 지원 행위로 이익을 편취한 식품 제조기업 ‘SPC그룹’ 계열사가 총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내부거래 혐의로 부과된 과징금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계열사 법인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고발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29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SPC 계열회사들이 SPC삼립을 장기간 부당 지원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판매망 저가 양도 및 상표권 무상제공 거래
공정위에 따르면, SPC계열사들은 무형자산을 SPC삼립에 저가로 부당 양도했다. ‘샤니’는 SPC삼립에 ‘판매 및 R&D부문의 무형자산’을 정상가격(40.6억원)보다 저가(28억5000만원)로 양도(12억1000만원)했다. 상표권을 8년간 무상 제공(9700만원)하면서 총 13억원을 지원했다.
당시 양산빵 시장 점유율 및 인지도 1위는 샤니였다. 그러나 SPC삼립을 중심으로 판매망 통합이 이뤄졌다. 양도 가액을 낮추기 위해 상표권은 의도적으로 제외됐다. 판매망 통합 이후에도 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최소화를 위해 샤니는 0.5% 내외의 낮은 영업이익률로 SPC삼립에 양산빵을 공급했다.
SPC삼립은 양산빵 시장에서 73%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1위 사업자가 됐다. SPC삼립-샤니간 수평적 통합과 함께 수직적 계열화를 내세워 ‘통행세 구조’를 확립했다.
통행세 구조란 거래 과정에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특수 관계인이나 다른 회사를 매개로 둬 이들 회사에 중간 수수료를 주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행위를 말한다. 공정거래법에서는 통행세 거래를 부당지원행위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계열사 지원행위로 SPC 총수 일가 지배력 유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파리크라상의 2세 지분율 상승 등의 효과가 있었다. SPC는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파리크라상(총수일가 100%)을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인데, 2세들이 보유하는 삼립 주식을 파리크라상에 현물 출자하거나 파리크라상 주식으로 교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파리크라상의 2세 지분을 높였다고 공정위는 평가했다.
◇밀다원주식 저가양도 거래
파리크라상과 샤니는 밀다원 지분을 적게 보유한 SPC삼립에게 밀다원 지분 전체를 이전하기도 했다.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회피하고 통행세 구조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공정위 분석이다. 삼립이 밀다원 주식을 100% 보유하는 경우 밀다원이 SPC삼립에 판매한 밀가루 매출이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밀다원 주식 매각으로 파리크라상과 샤니의 주식 매각 손실은 각각 76억원, 37억원에 이른다.
◇“역할 없는 중간유통사 ‘SPC삼립’…‘통행세 거래’ 판단 근거”
SPC 제빵계열사 파리크라상, 에스피엘, 비알코리아는 밀다원, 에그팜 등 8개 생산계열사가 생산한 제빵 원재료 및 완제품을 역할 없는 SPC삼립을 통해 구매했다. 구매대금은 총 381억원에 이른다. 3개 제빵계열사는 연평균 210개의 생산계열사 제품에 대해 9%의 마진을 SPC삼립에 제공했다.
공정위에 의하면, SPC삼립은 유통업체로서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민혜영 공정위 기업집단국 공시점검과 과장은 “SPC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SPC삼립로부터 원재료를 납품받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내부자료 점검 결과 SPC삼립은 생산계획 수립, 재고관리, 가격결정, 영업, 주문, 물류, 검수 등 중간 유통업체로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역할이 없어 이는 통행세 거래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PC에서의 유통 역할은 계열사 ‘GFS’가 담당했다.
그룹 차원의 지시에 따라 제빵계열사들은 SPC삼립이 판매하는 생산계열사의 원재료 및 완제품을 구매해야만 했다.
특히 밀가루의 경우, 비계열사 밀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지만 제빵계열사는 사용량의 대부분(97%, 2017년)을 SPC삼립에서 구매했다. 통행세거래가 부당지원행위인 것으르 인식했지만, SPC는 외부에 발각 가능성이 높은 거래만 표면적으로 거래구조를 변경하고, 사실상 통행세거래를 지속했다.
SPC삼립은 장기간 통행세거래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격히 증가하고 주가도 상승했다. 다만, 3개 제빵계열사가 판매하는 제품의 소비자가격이 높게 유지돼 소비자 후생이 크게 저해됐다. 대부분의 제빵 원재료 가격이 높아지면서 3개 제빵계열사가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SPC 소속 주요 계열사들이 참여해 7년(2011년~2018년)동안 지속된 ‘일련의 지원행위’로 SPC삼립에 제공한 이익 규모는 총 414억원에 달한다.
◇“SPC 계열사 부당지원, 공정거래저해 초래”
SPC 계열사 지원행위로 SPC삼립이 속한 시장에서 공정거래저해성도 초래됐다. 양산빵 판매시장에서 삼립의 경쟁조건이 경쟁사업자보다 상당히 유리해져 사업기반이 크게 강화됐다. 통행세거래로 각 제빵 원재료 시장에 신규 진입하여 시장의 일정 부분을 경쟁없이 독점했고, 타 업체의 진입을 봉쇄했다. 액란 및 잼 시장의 주요사업자는 대부분 중소기업으로서 봉쇄효과를 통한 경쟁기반 침해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파리크라상 252억3700만원 ▲에스피엘 76억4700만원 ▲비알코리아 11억500만원 ▲샤니 15억6700만원 ▲SPC삼립 291억4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통행세 거래 혐의로 파리크라상, 에스피엘, 비알코리아 등의 법인 및 허 회장, 조 전 사장, 황 대표이사 등의 경영진에 대해서는 고발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무형자산의 경우 가치평가가 용이하지 않아 지원 금액 산정이 어렵다”면서도 “이번 제재는 무형자산 양도 및 사용거래에 대한 최초 조치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상표권과 관련해 ‘기업집단 대림의 사익편취행위 건’에 이어 적정한 상표권 사용료를 산정해 법 위반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이어 관계자는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프랜차이즈 제빵시장의 유력사업자인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에 대해 통행세 거래로 지원객체 이익이 귀속된 행위를 시정해 소비자에게 보다 저가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며 “통행세 구조로 인해 봉쇄되었던 SPC 집단의 폐쇄적인 제빵 원재료 시장의 개방도가 높아져 계열사가 아닌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SPC “공정위, 끼워맞추기식 수사…일부 억울”
SPC 측은 공정위 판단에 일부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SPC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승계 작업 물밑 작업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샤니는 식품만 생산하는 회사이지만 SPC삼립은 다양한 유통망까지 갖춘 기업”이라며 “시장 경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중심으로 중복 거래처를 통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당시 그룹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관계자는 “SPC삼립은 총수일가 지분이 적고, 기업 주식이 상장된 회사로 승계의 수단이 될 수 없다”며 “총수가 의사결정에 전혀 관여한 바 없음을 충분히 소명했으나 과도한 판단이 이뤄져 안타깝다”고 답변했다.
저가양도 거래 문제에 대해 관계자는 “판매망 및 지분 양도 부분에서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적법 여부에 대한 자문을 거쳐 객관적으로 이뤄졌다”고 답변했다.
SPC 측은 향후 관련 의결서를 확인한 뒤 대응 방침을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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