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광희는 참지 않는다. 그는 최근 MBC ‘라디오스타’에서 자신이 고정으로 출연했던 MBC ‘끼리끼리’가 경쟁 프로그램인 SBS ‘런닝맨’에 밀려 막을 내렸다는 얘기가 나오자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런닝맨’ 대단하지도 않은데…. 우린 ‘슈돌’(KBS ‘슈퍼맨이 돌아왔다’)한테 진 거지.” ‘슈돌’의 시청률이 ‘런닝맨’의 두 배에 가깝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타당한 지적이다. 김구라가 “게스트를 쥐어짜는 프로그램은 오래 못 간다”며 난데없이 ‘런닝맨’을 공격했을 때에도, 광희는 지체없이 “이거(‘라디오스타’) 오래 못 가겠네”라고 응수했다. ‘라디오스타’ 역시 게스트를 쥐어 짜면서 수명을 이어왔다는 뜻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했지만 예능계에서 먼저 주목받은 존재. 하지만 경력과 인기가 위계를 나눌 기준이 되는 연예계에서, 중소기획사 소속으로 높지 않은 인지도를 가진 그룹의 멤버였던 광희는 곧잘 서열 최하위로 밀려났다. MBC ‘무한도전’ 출연 당시 그는 박명수나 정준하 같은 ‘형님’들의 말을 받아치되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했다. 유이를 이상형으로 꼽으면서도 정작 그의 앞에선 “그런(예능에서의) 모습도 괜찮냐”며 조심스러워했고, 빅뱅의 지드래곤·태양과 팀을 꾸려 음악을 만들게 됐을 땐 “나를 선택해줘서 고맙다”면서 자신을 낮췄다.
MBC ‘놀면 뭐하니?’에 처음 초대 받았을 당시에도 광희는 다른 출연자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웃음을 안기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을 진행하는 그는 ‘놀면 뭐하니?’에 ‘요즘 음악 전문가’ 자격으로 출연했지만, 쌈디·코드쿤스트·지코 등 힙합 가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금세 비전문가 취급을 당했다. “광희가 하는 음악 스타일이 있냐”거나 “밥을 못 먹냐” “시계 팔아서 밥 좀 사 먹어라” 같은 놀림도 나왔다. 심지어 “나는 광희의 팬이다”라는 말조차 선망이 아닌 시혜적 태도가 엿보였다.
이미 ‘무한도전’에서 수명을 다한 낡은 예능 문법에 신선함과 생기를 불어넣는 건 광희의 ‘참지 않음’이었다. 싹쓰리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부터 광희는 은근한 위계를 깨부수며 재미를 안겼다. 싹쓰리의 수발을 들다 괴롭힘을 당하면 곧장 디스패치에 제보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연락을 바라는 비에겐 “왜 이리 질척거리냐”며 질색했다. 심지어 ‘국민MC’ 유재석의 위세에도 광희는 주눅들지 않는다. 자리를 옮겨다니는 광희에게 유재석이 “부산스럽다”고 핀잔 주자, 그는 “방송에 도움이 될까 가봤어”라고 응수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확실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남성 중심 예능에서 광희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독설에 가까운 직설을 쏟아내면서도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서다. 그는 지코 같은 대중적 스타나 비, 김구라 등 업계 선배에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인 동시에, 후배 아이돌 가수나 비연예인 출연자에게 기꺼이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경력을 얕잡아보는 김구라에게 “‘라스’는 예의상 온 것”이라고 맞서지만, ‘주간아이돌’에선 자신보다 어리고 경력도 짧은 후배 가수들에게 개의치 않고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광희의 지난 10년은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시기였다. 데뷔 초엔 ‘흙수저 아이돌’에서 ‘예능돌’로 인정받기 위해 분투했고, 커리어의 정점이 될 줄 알았던 ‘무한도전’ 고정 출연 당시에는 시작부터 ‘황광희 결사반대’ 피켓을 든 사람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전역 후엔 고정 프로그램이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하는 쓴 맛도 봤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광희는 ‘놀면 뭐하니?’ 첫 녹화를 마친 후 김태호 PD에게 “다음에 또 불러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면 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줄을 선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해야 잘 되는 것”임을 깨달은 자의 여유다. 그러니 자신을 증명하려다 과한 책임감에 지치지 말길. 이미 광희는 충분히 잘해내고 있다. ‘진짜루’.
wild37@kukinews.com / 사진=MBC ‘라디오스타’, ‘놀면 뭐하니?’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