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리셋하지 않아도 괜찮아

[유니프레스] 리셋하지 않아도 괜찮아

기사승인 2020-10-31 11:21:54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심가은 중대신문 편집장 = 많은 청년의 공감을 끌어낸 드라마 <청춘시대>에는 취업준비생인 ‘진명’이라는 주인공이 있다. 입사 최종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결국은 내 탓이야. 부모의 경제력도 아니고, 스펙도 아니고, 빽도 아니고,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된다는 얘기인데, 문제는 내가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학교, 회사, 사회 등으로부터 주어지는 다양한 기준. 누구에게나 흐릿한 틀이지만 대부분의 청년이 여기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한다. 그러나 모두의 최선이 같은 모양일 수는 없기에 노력했다고 반드시 성공이 따르지는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틀의 모양은 유동적이다. 새로운 기준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맞춰야 하는 우리 사회의 ‘진명’들은 당혹스럽다.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데, 뭐라도 해야 한다.

변화하는 틀을 탓할 수 없으니 자신을 돌아본다. ‘이렇게 했더라면’, ‘그때 달랐더라면’ 하는 마음이 모여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빠진다. 현재의 모습에 불만족해서 지금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게 이상한 고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때 강박적으로 새로움에 집착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필기 중 형광펜을 잘못 긋거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트 한 장을 아예 뜯어버렸다. 실수의 흔적을 보는 게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이면 다음해에는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새해계획을 세우면서도 여전히 나태한 연말을 보냈다. 마치 연초가 되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돌이켜보면 잘못 그은 한 획 때문에 노트를 찢는 건 시간낭비였다. 글씨가 비뚤어지는 것, 밑줄이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실수기 때문이다. 필기의 본 목적인 공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나마 종이 한 장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지만, 연말에 망가져 버린 바이오리듬은 연초가 된다고 한순간 달라지지 않는다. 새로움에 대한 막연한 갈망은 허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컴퓨터를 초기화하듯 인생도 리셋(reset) 할 수 있다고 믿는 리셋 증후군은 청소년과 청년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기준에 적응하기 버거워 새로운 인생을 바라는 청년들의 모습이 방증하는 것은 무엇일까. 본연의 모습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던 경험의 발현이다.

2020년 전반기 20대 우울증 환자가 전년 대비 약 26.3%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취업난이 심해지자 청년은 일하지 못해 우울하다. 일을 제외하고도 인간은 많은 활동을 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나라 청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일’이다.

대한민국 청년 정책은 일자리를 만들고 창업을 지원하는 데 집중돼있다. 청년을 투자의 대상, 국가의 인력으로 본다.

반면 유럽은 청년을 노동력을 취급하지 않는다. 유럽 청년 보장(EU Youth Guarantee)의 고용정책 운칙은 청년에게 즉각적인 구직활동을 강요하지 않으며 성과를 요구하지 않으며 기회를 보장한다.

그곳에서는 청년 또한 국가가 적정 수준의 행복과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할 대상이며 놀이·취미·여가·실험·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국가의 정책도 청년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득을 낼 수 있는 일이 청년의 전부가 아니다. 노동이 아닌 청년의 활동도 가치 있고, 이 가치를 인정받아야 청년들은 본연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니 일하지 않는 청년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노동을 준비하는 데 쓰지 않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로써 틀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진명’들도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니프레스]는 쿠키뉴스와 서울소재 9개 대학 학보사가 기획, 출범한 뉴스콘텐츠 조직입니다. 20대의 참신한 시각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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