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첨단 기술을 입다

스포츠, 첨단 기술을 입다

기사승인 2020-11-06 07:30:02
지난해 9월 마의 기록인 2시간을 깬 엘리우드 킵초게, 그의 기록 경신에는 나이키의 기술이 있었다. 사진=AP 연합뉴스
[쿠키뉴스] 김찬홍 기자 = 스포츠가 곧 과학이 된 지 오래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응집된 제품들로 선수들의 신체를 향상시켜 기존의 한계를 쉽게 넘어서고 있다. 0.01초를 다투는 기록경기는 물론 거의 모든 종목에서 과학기술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구기 종목에서는 오심과 편파판정을 막기 위해 인공지능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 마의 기록을 깨라

스포츠용품 제조사들은 선수들의 기록 경신을 위해 거듭된 연구로 발전을 이어나갔다.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첨단 과학 기술을 탑재한 제품들을 통해 숙원처럼 여겨졌던 기록을 깨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부는 스포츠의 공정성과 존엄성을 무시한다며 스포츠계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전신 수영복은 한 때 수영계를 발칵 뒤집었다. 0.01초에 승부가 갈리는 수영은 영법과 호흡이 이전에는 가장 중요시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영복의 중요성이 대두됐다.남자 선수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삼각 혹은 사각 수영복을 착용했는데,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신 수영복을 입기 시작했다. 몸을 모두 감싸는 밀착형 전신 수영복은 부력을 높여주고 근육을 압착하는 동시에 피로 유발물질인 젖산의 축적을 막고, 물의 저항을 최소화 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2007년 전신 수영복을 입은 박태환. 사진=연합뉴스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의 기록이 기존보다 무려 3% 가까이 줄었다는 연구 발표가 나오자 누구나 할 것 없이 전신 수영복을 입었다. 착용을 하는데 무려 10분 가까이 소모되지만 기록이 크게 단축되다 보니 선수들은 전신 수영복을 고집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의 이안 소프가 무려 3관왕을 차지하면서 수영장은 온통 전신 수영복으로 도배됐다.

절정은 2008년이었다. 제조사들은 NASA의 항공 우주 기술을 수영복에 도입해 기존보다 마찰력이 최대 20%까지 줄어든 제품을 출시했다. 결국 2008년에 세계 기록이 무려 108개가 수립됐고, 이후 ‘2009 로마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만 40번이나 기록이 새로 써졌다. 

결국 수영계에서 기술 도핑 논란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국제수영연맹은 2009년 5월 수영복 규정을 다듬었다. 남성은 허리에서 무릎까지, 여성은 어깨에서 무릎까지만 수영복 착용을 허용하면서 전신 수영복은 수영계에서 퇴출됐다.

마법의 신발이라고 불린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 사진=나이키 공식홈페이지 캡쳐
두 번째는 육상계에서 마법의 신발이라고 불린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 시리즈다. 2016년 첫 공개된 이 시리즈는 항공우주산업에서 사용하는 특수소재를 사용해 가볍지만 튼튼하다고 알려져 있다.

탄성이 큰 탄소섬유판을 신발 쿠션에 끼워 넣어 추진력을 얻는 동시에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베이퍼플라이’의 중창(미드솔)에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다른 경쟁사들의 제품에 비해 반발력이 훨씬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퍼플라이’를 신은 선수들은 “신발을 신지 않은 느낌에 발에 스프링이 달린 것 같다”고 극찬을 했다.

효과는 그 즉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베이퍼플라이’를 신은 선수들은 곧장 상위권에 랭크되기 시작했고, 2019년 10월 케냐 마라톤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가 이 신발을 신고 사상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2시간 안에 완주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당시 킵초게의 기록은 무려 1시간59분40.2초. 세계육상연맹이 인정하는 공식 마라톤 대회가 아니었지만 단숨에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킵초게의 기록이 알려지면서 선수들은 일제히 ‘베이퍼플라이’ 시리즈를 신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오사카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상위 10명 중 8명이 ‘베이퍼플라이’를 신을 정도였다.

‘베이퍼플라이’가 세계 최고의 신발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육상계에서는 런닝화 제작 기술이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런닝화와 새로운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1월 국제육상연맹은 런닝화에 대한 규정에 대해 일부 손질을 보기 시작했고, ‘베이퍼플라이’는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나이키는 국제육상연맹의 발표 직후 규정에 적합한 새로운 런닝화 ‘알파플라이 넥스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라파엘 나달이 착용하는 시계인 '리차드밀'의 ‘RM 27-04’은 고작 30g 밖에 되지 않는다. 사진=로이터 연합

△ 첨단 기술이 바꾼 세계에서 가장 예민한 선수

첨단 기술은 극도로 예민한 선수도 바꿔버렸다.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선수로 유명하다. 서브를 치기 전 얼굴의 부위를 7번 만져야 하고, 코트를 건너갈 땐 절대로 선을 밟지 않는다. 또한 벤치 앞에 물병 2개를 코트를 바라보게 놓으며, 벤치로 향할 대는 수건을 건네받은 이후 오른발로 라인 위를 지나가는 것이 철칙이다.

이밖에도 경기 시작 45분 전 샤워, 양말 올려 신기 등 크고 작은 징크스가 무려 20개나 달한다. 이 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선수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나달이 2010년 갑작스레 시계를 차고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그가 착용한 제품은 ‘리차드밀’의 시계. 

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달이 왼손잡이라고는 하지만 손목에 찬 시계는 경기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 테니스에서 스매시를 할 때 순간 중력 가속도가 최대 1000G까지 발생하는데, 일반적인 시계라면 고장이 나기 쉽다. 특히나 몸을 던질 때도 많아 시계가 충격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리차드밀’에 따르면 나달이 착용한 시계 ‘RM 27-04’ 모델은 케이블 서스펜션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어 1만2000G 이상의 가속 중력에도 버티면서 시계침이 움직인다. 특히 탄소섬유가 38.4% 포함된 새로운 소재로 금속과 맞먹는 인장강도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즉 테니스를 하면서도 절대 깨지거나 고장이 나지 않는 제품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렇게 탁월한 충격 저항성을 갖춘 시계의 무게가 총 30g밖에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경기를 하면서도 착용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 나달도 쉽게 착용할 수 있었다. 나달은 ‘리차드밀’의 시계를 두고 “마법같다”고 말했다.

2019년 미국 독립야구에서는 AI 심판이 도래했다. 가장 왼쪽 심판은 AI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에어팟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AP 연합
△ AI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국에서 1승 4패를 거두자 전 세계가 AI의 실체와 위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세계 모든 분야에서 AI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스포츠계에서도 AI의 도입을 점점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정확하고 면밀한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해 미국 독립리그 애틀랜틱리그 올스타전에 로봇 심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포수 뒤에 심판이 서 있는 건 똑 같다. 그런데 심판의 역할은 다르다. 뒷 주머니에 아이폰, 귀에는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을 끼고 있다.

심판은 트랙맨 시스템으로 판정한 결과를 에어팟으로 전달받은 뒤 그대로 적용하는 역할만 한다. 그라운드에서 볼·스트라이크를 외치는 건 주심이지만 판정의 주체는 ‘로봇 심판’이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야구계가 갖고 있던 상식과는 완전 상반되는 방식이다. 이어 한국에서도 AI 심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퓨처스리그(2군리그)에서는 ‘로봇 심판’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테니스계에도 AI 심판이 시범적으로 도입됐다.

올해 9월에 열린 테니스 US오픈에서는 기존 선심 9명을 모두 제외한 대신 주심 1명만 남기고 경기를 진행했다. 사람들을 대신해 기존에 사용하던 전자 판독 시스템인 호크아이가 경기를 판정했다. 이밖에도 지난해부터 축구계에서는 VAR(비디오판독시스템)을 통해 오프사이드 판정을 잡기 시작했다.

로봇 심판이 등장하자 크게 견해가 엇갈렸다. 판정을 통해 나오는 결과에 대해 ‘공정성과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찬성파와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반대파가 부딪혔다. 정작 경기에 참가한 선수와 심판들은 불만을 크게 표하지 않고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kch0949@kukinews.com
김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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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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