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환불원정대①] ‘센 언니’가 아니다, ‘강한 언니’일 뿐

[굿바이 환불원정대①] ‘센 언니’가 아니다, ‘강한 언니’일 뿐

기사승인 2020-11-07 08:30:02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효리야. 만나면 얘기하려고 했어.” 가수 엄정화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자, 이효리에게도 긴장한 기색이 스친다. “뭔데, 심각하게….” 엄정화는 얼른 “너무 고맙다”고 덧붙인다. 이효리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난 언니가 안 한다고 할까봐….” MBC ‘놀면 뭐하니?’에서 그룹 환불원정대가 처음 한 자리에 모인 날의 모습이다.

이효리의 돌발 제안으로 시작된 환불원정대 프로젝트가 7일 막을 내린다. 데뷔곡 ‘돈 터치 미’(Don't Touch Me)는 발매 직후 주요 온라인 음원 차트 정상을 달성했고, MBC ‘쇼! 음악중심’에서 이들이 꾸민 무대는 유튜브 조회수 1000만 뷰를 넘겼다. 엄정화는 ‘돈 터치 미’로 차트 1위에 오른 날, SNS에 “효리야. 요즘의 이 신나는 일들을 만나 언니는 매일이 재밌고 행복해. 함께 할수 있게 불러줘 너무 고마워”라고 적었다.

엄정화는 환불원정대를 시작하면서 제작자 지미유로 분한 유재석에게 “이거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데뷔 28년차, 한국 나이로 52세인 그는 “항상 나이 때문에, 가수로 나오기가 민망”하다고 했다. 엄정화는 환불원정대 멤버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나는 스물일곱, 스물여덟 살 때부터 이게 마지막이라고 계속 듣고 지나왔거든. 그때는 서른 살 넘은 여가수가 없었지.”

엄정화가 30, 40, 50대 여가수로 살아남아 개척한 길은 그의 뒤를 따르는 후배들에게 등대가 되어줬다. 이효리는 자신에게 엄정화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언니 아니면 (30대 댄스 여가수가) 없잖아요. 앨범 낼 때마다 ‘맞아. 정화 언니도 했지. 정화 언니가 그거 할 때 내 나이였는데, 그렇게 잘하셨잖아’ 생각하면서.” 후배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는 이효리도 마찬가지다. 12년 전, 거의 모든 언론과 방송이 이효리의 30대 진입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그는 42세인 지금도 유행을 이끄는 아이콘으로 건재하고, 화사는 그런 이효리를 보며 “말 안 해도 위안이 된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이다. 연령주의가 극심한 연예계에서 ‘나이 먹은 여성’은 쉽게 주변부로 밀려나곤 했다. “나는 가끔 내 나이를 기사를 보고 알아. ‘엄정화, 50대 맞아?’ 이렇게 나이를 부각시키는 제목 때문에. 그런데 나는 30대 중반부터 그걸 겪어 왔어. ‘나이든 걸 창피해 해야 하나? 그럼 나이에 맞춰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이 생길 정도로.” 엄정화는 tvN ‘온앤오프’에서 동갑내기인 모델 이소라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이효리도 30세를 앞두고 엄정화를 만나 “(내가) 늙어가지고…하도 신문이랑 기자들이 (나이로) 난리를 쳐서…”라고 토로했다. 이들은 자신의 나이가 아니라 나이 든 여성을 소외시키려는 사회에 맞서야 했다.

환불원정대 프로젝트가 의미 있는 건, 여성의 성취에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엄정화와 이효리를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시와 화사는 두 사람의 따라 걸으며 여성 아티스트의 길을 더욱 넓히고 늘린다. 제시는 나이 때문에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꺼려진다는 엄정화를 “언니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언니, You are 영원해”라고 다독였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와 용기를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센 언니’라는 구태한 별명 대신 새로운 호명이 필요하다. 사회의 편견과 싸워온 그들의 강인함에 존경을 보내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wild37@kukinews.com / 사진=MBC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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