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피해자들의 상처도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났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출범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년의 활동기한을 마무리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규명해야 할 진실이 여전히 적재해 있다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오늘도 진상 규명을 외치는 이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지금도 가습기살균제 질병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피해자에게 그 피해를 입증하라니요.”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구제를 위해 지난 2016년 출범한 시민단체다. 출범부터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규명을 위해 활동해 온 가습기넷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역사가 10년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피해 규명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피해자 편에 선 든든한 지원군은 없었다는 장 간사.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으로는 진실 규명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난 16일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장 간사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부는 참사를 일반적인 교통사고 사례로 바라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불특정 다수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으나 정부는 여전히 가해기업과 피해자 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참사 대응에 미흡했던 정황도 있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한 ‘가습기살균제와 폐손상 인과관계 확인을 위한 동물독성시험’에서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주성분 CMIT/MIT)가 제외됐다.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폐섬유화 원인으로 알려진 가습기살균제 PHMG, PGH 제품군 투여량을 가습기메이트에 적용해 예비시험을 했다면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이 있었다.
장 간사는 “당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원료 물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조사가 미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가습기넷과 피해자들이 몇 차례의 고발을 진행한 뒤에야 2018년 1월 수사가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가습기살균제 외 어디에도 쓰이면 안 되는 물질이었다”며 “해당 물질이 타 제품에도 사용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고민도 필요한데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 수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느슨한 법망을 빠져나간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최근까지 유통되기도 했다. 지난 9일 사참위는 가습기에 장착된 살균부품이 가습기살균제에 해당하지만 현재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는 독자적인 생활제품과 가습기를 생산·판매한 기업이 가습기에 살균필터 등 살균필터, 항균필터, 살균볼, 향균볼의 형태로 장착 또는 고정된 상태로 판매됐다.
생활제품으로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는 판매중지, 수거 및 독성실험 등의 조치가 있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에 해당하는 살균부품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됐고, 현재 유통·판매되고 있었다.
해당 제품을 제조한 가전기업에 대해서도 피해구제분담금 부과 대상 여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진 바 없었다.
장 간사는 징벌적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가 참사 예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국내에서 이런 참사가 발했던 배경에는 기업에게 경각심을 일으킬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은 경영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된 기업들은 영업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해자의 악의적인 행위를 방지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반사회적인 가해자 행위에 대해서는 실제 피해자의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집단소송제는 대표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면 비슷한 집단이 판결의 효력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장 간사는 “징벌적 손해배상과 집단소송에 대해 법무부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은 상황”이라며 “사후 예방에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장 시급한 건 피해자 구제였다. 장동엽 간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아직도 피해 인정을 받지 못한 소비자가 너무나 많다. 정부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피해를 입증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의 피해를 정부가 입증한다는 자체도 진상 조사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며 “질병 연구에 대한 진전을 얻은 뒤 차후 정부가 보상권을 가해 기업에게 청구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smk5031@kukinews.com / 사진=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