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의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다. 동생을 향한 폭력을 옆에서 지켜보며 두려움에 떨고, 본인도 신체적 학대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양부모의 친딸이 바로 또 다른 피해자다. 친딸에 대한 신체·정신 감정과 함께 보호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다수의 맘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숨진 정인이보다 두살 더 많은 친딸 A양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왔다. 양모 장모(35)씨의 ‘분풀이’ 대상에 친딸이라고 예외였겠느냐는 것이다. 또 정인양을 학대하는 장면을 지켜본 것 자체가 심각한 트라우마가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악마 같은 인간이 자기 딸은 학대 안 했을까 의심된다”고 적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직접적인 폭력이 없었다 하더라도 학대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 심리적 학대”라며 “친딸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장씨가 A양을 신체적으로 학대한 정황은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
지난 13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신혁재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에서 장씨는 A양을 때린 사실을 인정했다. 장씨 측 변호인은 정인양과 마찬가지로 A양도 똑같이 혼내고 때렸다면서 이는 훈육 방식의 하나였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같은날 재판에서 검찰은 장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피고인이 밥을 먹지 않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를 강하게 흔들고, 발로 피해자의 배를 밟는 등의 충격을 가해 피해자가 췌장 절단, 복강내 출혈 등의 이유로 사망토록 했다”고 지적했다. 양부모 측은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서도 “고의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를 통해 장씨가 남편과 ‘A양이 말을 안들어 정인이는 두고 A양만 때렸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도 확인됐다.
A양이 학대 장면을 지켜보며 무서움에 떠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장씨, 정인양, A양이 양부 회사에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지난 12일 보도됐다. 영상 속에서 장씨는 정인양이 타고 있는 유모차를 거칠게 밀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 충격으로 정인양의 목은 뒤로 꺾였고 유모차는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 정인양은 불안한 듯 유모차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장씨는 A양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모두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아동학대는 친자녀와 입양한 자녀를 가리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모가 가한 아동학대 2만2700건 중 친부모가 가한 학대는 95.7%(2만1713건)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지난 13일 한 방송에 출연해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인 학대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친딸도 굉장한 공포감에 휩싸였을 것”이라며 “친딸에게는 정인양과 같은 학대를 안 했다고 하더라도 (목격한 것 자체도) 수동적 형태의 학대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피해아동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보호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의 취지에 “피해아동 형제자매의 경우 직접적인 육체적 학대가 없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다. 아동학대 행위자인 부모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하는 등 정신적 학대를 받고 있다”며 “피해아동 형제자매에 대해서도 응급조치와 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해 학대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임기 만료 폐기됐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친딸 역시 신체적 학대와 더불어 굉장히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신체, 정신 감정을 하고 꼼꼼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아울러 친자에 대한 부모의 학대 정황이 드러난다면 검찰에서 이를 추가 기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부모가 아이에게 거짓진술을 강요해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합리적이고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봤다. 승 연구위원은 “이것 자체가 증거인멸 위험이 있는 것”이라며 “법원에서 (불구속 기소된) 양부에 대한 실형이 나오기 전에라도 법정구속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승 연구위원은 “친딸은 이 사건에서 지워진 인물이다. 이제 우리는 친딸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면서 “숨진 정인양에 공감하며 그가 느꼈던 공포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친딸밖에 없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아이에게서 (부모에게 불리할 수 있는) 진술을 어떻게 끌어낼지가 앞으로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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