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2', 'PC버전을 모바일로, □□□M'.
최근 출시된 게임을 접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다. 새로운 작품보다 이전에 성공한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해 후속작·계승작 출시에 집중하는 추세다. 26일 앱 통계사이트 게볼루션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 최고 매출 순위 10위권에 포함된 게임 가운데 6종은 기존 IP를 계승한 작품이다. 20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숫자는 10개로 증가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블리자드, 유비소프트, 베데스다 등 해외게임사와 달리 국내 게임시장에서 기존 IP를 활용한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었다. 현재와 달리 당시 IP라는 단어 자체가 자주 쓰이지 않을 정도로 지식재산권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국내 게임업계에 IP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의 보급화가 이루어진 2012~2013년 무렵이다. 이에 따라 메인 게임플랫폼은 PC에서 모바일로 바뀌었고, 스마트폰이 완벽히 자리잡은 2010년 후반부터 국내게임사들도 적극적으로 IP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리니지2 레볼루션(2016)', '리니지M'(2017)',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 등 PC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가 대거 모바일로 이식되면서 이런 흐름은 더욱 심화됐다.
IP 활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늘었다. 이전에 원작을 즐겼던 이용자를 코어 층으로 끌어올 수 있고,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대중문화 전반에 '뉴트로(New+Retro)' 사조가 퍼짐에 따라, 원작을 해보지 못한 젊은 이용자를 매료시키기도 용이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견게임사에 근무하는 한 개발자는 IP활용 작품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 게임시장에도 어느 정도 레퍼런스가 쌓였고, 흥행 잠재력이 높은 IP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만들어지면서, 소위 'K-게임'의 파워도 증가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출시 초부터 지금까지 '바람의 나라: 연'을 즐기고 있다는 30대 직장인 이용자는 "초등학생 시절 모뎀으로 하던 '바람의 나라'가 모바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설렜다"며 "물론 지금도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때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IP 활용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이용자는 최근 국내 게임사가 지나치게 과거의 명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내비친다. 시간적·금전적 자원이 많이 드는 신작 개발 대신 '리마스터', 'OOO2' 등의 네이밍으로 사실상 IP 재탕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대 대학생 이용자는 게임사가 '뉴트로'라는 명목하에 IP 재탕을 정당화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이용자는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뉴트로라고 하는데, 최근 게임사들이 내놓은 IP활용 작품에는 새로움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출시된 IP 활용작은 이전 방식 그대로의 MMORPG를 그냥 모바일로 이식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현업에 있는 몇몇 관계자도 비슷한 우려를 드러냈다. 인디게임사에서 일하는 개발자는 "최근 한국 게임시장에서 IP를 매력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다소 부족한 것 같다"며 "과거에는 흥행에 성공한 IP라도 지금 시점에는 매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개발자는 "단순히 잘 나가서 다시 사용했다는 '수박 겉핥기' 식의 접근이 아니라, 왜 당시 이 IP가 사랑받았는지를 심도있게 분석해야 한다"며 "건강한 IP활용이 아닌 IP재탕이 계속된다면, 유저들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건강한 IP활용을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 업계 관계자들은 "성공한 IP에는 크게 '눈길을 끄는 일러스트', '핍진성(개연성)이 충만한 세계관' 등의 공통점이 있다"고 얘기한다.
매력적인 일러스트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PC, 콘솔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에서도 고화질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미지나 그래픽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용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출시된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 킹덤'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내세워 많은 호평을 받았다. 데브시스터즈 관계자는"쿠키런을 대표하는 기본 캐릭터인 용감한 쿠키는 성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목소리를 담당한 양정화 성우의 팬심으로 5성까지 제일 먼저 키웠다는 경우도 있고, 전투 능력이 최상위인 쿠키가 아니어도 외형적인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애정으로 키운다는 유저들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관 역시 중요한 요소다. "스토리가 나올 때는 스킵을 누른다"는 일부 이용자도 있지만, 인물설정·스토리 등 세계관에 개연성이 충만할수록 게임은 탄탄해진다. 특히 게임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RPG 장르는 이같은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올해 연말 출시예정인 펄어비스의 AAA급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최초 트레일러 공개 당시 '붉은사막'은 '검은사막'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알려졌다. 아직까지 많은 정보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용자들은 '검은사막'의 방대한 세계관이 '붉은사막'과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하고 있다.
대형 게임사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게임사 입장에서는 자사가 보유한 좋은 IP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기를 원한다"면서도 "다만 'IP재탕'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뛰어난 셰프는 좋은 재료로 똑같은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신선함을 더한다"며 "국내 게임사도 이러한 노력을 한다면 이용자들의 비판이 잦아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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