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수술실 CCTV 설치, 의료인 잠재적 범죄자 취급”

의료계 “수술실 CCTV 설치, 의료인 잠재적 범죄자 취급”

"실효성도 떨어져... 어린이집 CCTV 설치 이후, 되레 범죄 증가"

기사승인 2021-05-26 12:32:32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둘러싼 공청회에서 의료계가 CCTV 설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수술실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 관련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수술실CCTV설치법 관련 공청회)’에 의료계와 환자단체 등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김종민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공청회에서 “우선 수술실 CCTV설치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의사들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최근 인천 대리수술 사건에 대해서 의협 차원에서 엄중 처벌 원칙을 세우고 대응하고 있다. 이번 이필수 의협 회장 집행부 임기 내 대응에 나서겠다. 반성과 사과를 지켜봐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술실 CCTV 의무설치에 대해 확실히 반대한다”며 “단순 밥그릇 지키기, 신뢰 회복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상황 우려하고 있다. 앞서 오랜 논쟁이 있었지만 득실을 고려할 때 득이 더 큰지 명확하지 않다. 연간 수술 건수에 비교하면 지난 68개월 동안 112건의 대리수술만 발생했을 뿐이다. 발생률이 0.001% 수준이다. 의료선진국 등 사례를 살펴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내 수술실 내 CCTV 설치와 관련 논의는 없었다. 미국도 한 개 주에서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법제화의 영역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앞서 의료계의 대리수술, 유령수술 등이 내부 직원의 공익제보를 통해 알려진 사례를 언급하며 김 이사는 “이미 내부 감시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동료의 시선이 가장 안전하고 강력한 제동장치다. 찜질방, 목욕탕에서 간혹 일어나는 절도 때문에 CCTV를 설치할 수 있겠는가. 예민한 신체 부위 노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CCTV 설치로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 이사는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이후 원내 아동 폭행은 2017년 776건에서 2019년 1371건으로 증가추세를 보인다. 경기도의료원에서의 수술실 CCTV 시범사업 이후에도 현재까지 영상 복사 신청이 한 건도 없었다. 실효성이 없다. CCTV가 만능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직된 수술환경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했다. 김 이사는 “수술은 위험이 늘 숨어 있는 것이다.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소극적, 방어적인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환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공익이 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오주형 대한병원협회 회원협력위원장은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제화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전 세계 어디에도 수술실 내부를 촬영하는 것은 없다. 너무 과도하고 파급효과, 부작용을 고려하면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에서 CCTV를 제일 많이 설치한 나라가 중국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치안과 안전, 국민 인권이 더 보호하고 우수하다고 평가받는가. 우리나라가 수술실 CCTV를 강제할 만큼 의료 후진국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어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단순히 불법의료행위를 막고자 한다는 행정편의주의에 불과하다”며 “의사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을 뿐 아니라,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수술실에는 많은 지원인력이 있어 부정의료행위가 발생하기 어렵고 비밀로 묻기 힘들다. 극소수 의료인의 범죄행위로 CCTV를 설치하자는 것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일반화의 오류”라고 설명했다.

최선의 진료가 필요한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언급했다. 오 위원장은 “사회감시망 확대는 조심스레 이뤄져야 한다”며 “환자와 신뢰를 회복할 방편의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파렴치범을 감시할 전자발찌의 의미가 돼선 안 된다. 의사들이 사고의 위험성이 큰 수술을 피하고 방어, 소극적인 진료가 늘어나게 돼 결국 중증응급의료의 체계마저 붕괴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에게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수술실 입회 시 출입 강화. 입구 설치 등의 시스템을 하는 게 적절한 개선안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유령수술’, ‘대리수술’을 막기 위해 ▲의사면허관리원 신설, 의사 면허 관리 강화 ▲의협 내 중앙윤리위원회 기능 강화 및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운영 ▲기존 수술실 출입관리 규정 보안 및 강화 ▲회원 기관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감독 및 적발 시 처벌강화 ▲공익제보 독려 및 제보자에 대한 보호 강화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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