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가을 물안개가 환상적인 곳, 예당호와 용담호
- 3경 아름다움 감상하려면 새벽잠 설쳐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난여름 폭염도 어느새 어려운 우리 이웃의 연탄창고가 빈 것을 걱정하는 계절이 되었다. 지난 7일 겨울을 알리는 입동에는 꽃잎마다 서리가 내려앉았다.
가을 여행의 백미는 단풍이지만 노랗고 빨간 단풍 외에도 늦가을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컬러가 있다. 다름 아닌 이른 아침 우리 산하를 온통 하얗게 물들이는 물안개와 운무 그리고 서리 꽃 등 흰색의 향연이다.
남쪽 지역은 이제야 단풍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지만 가을의 끝자락에서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너머 단풍 곱게 물든 산 아래 능선을 감싼 구름바다와 꽃잎과 떨어진 낙엽마다 영롱한 얼음물방울 하얗게 맺혀있는 늦가을 수채화를 소개한다.
예산 예당호 물안개와 봉수산 운해
어둠과 밝음이 만나는 새벽호수에 안개가 자욱하다. 말 그대로 한치 앞이 안보이는 오리무중(五里 霧中)이다. 평생을 호수에서 생업에 종사하던 어부도 잠시 물길을 잃고 헤맨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밤새 응축된 물 알갱이가 무수히 물안개로 피어오르며 모든 새벽풍경을 감춘다. 물에 잠긴 나무와 서리 내린 풀, 마주하는 높고 낮은 산들이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이따금 오가는 자동차 불빛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 산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며 사물이 형체가 조금씩 나타난다. 이 때 물위에서 춤을 추듯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향연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호수 중간 중간에 떠있는 좌대들을 배경으로 오리 떼가 날아오르고 얕은 물속에서 자라난 나무 위로 왜가리 한 마리가 도도한 자세로 서있다.
짧은 시간동안 대형 한지 캔바스에 자연이 그려내는 다양한 수묵화를 담아내느라 삼각대에 카메라를 둘러맨 사진작가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해가 중천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면 어느새 물안개도 안개처럼 사라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소재 예당호의 아침풍경이다.
사진가 최남식(61) 씨는 “낚시업에 종사해서 배를 타고 예당호를 누비지만 사계절 이 곳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한다”면서 “특히 늦가을 새벽의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면 시상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라고 말했다.
예당호 인근의 봉수산휴양림에서 30분에서 40분정도 오르면 봉수산 정상 능선에서 예당호수 넘어 중첩된 산 능선을 따라 산봉오리만 남겨놓고 모두 구름에 잠긴 멋진 운해를 감상할 수 있다. 산아래 펼쳐진 대자연의 가슴벅찬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동안 구름바다가 한 폭의 산수화가 그려내고 있다.
봉수산에 오르는 방법은 봉수산휴양림 외에서 임존산성 아래서 오르는 방법 등 다양하다. 가장 좋은 봉수산 운해촬영 포인트는 산 정상아래 산불감시초소이다.
운해 역시 안개의 일종이다. 지상에 피어난 안개가 구름바다처럼 깔려 있다고 해서 운해라 불린다. 산 정상에 올라 중첩된 산허리마다 휘감아 두른 운해를 바라보면 신비스러운 대자연의 형상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새벽 안개 촬영 명소’ 진안 용담호 주천생태공원
서서히 지난 밤 어둠이 걷히면서 잔잔한 수면 위로 피어오르는 미세한 물방울이 그려내는 변화무쌍한 그림에 눈을 떨 수 없다. 마침내 대자연의 향연이 시작됐다. 호수 건너 역광의 늦가을 풍경을 배경으로 물안개의 춤사위와 함께 이따금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며 여유롭게 유영하는 오리들은 가을 수묵화의 완성이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 주천 생태공원 일대가 물안개와 단풍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옥빛의 호수와 주변을 둘러싼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물안개를 배경으로 호수 수면 위 아래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나무들은 마치 반을 접은 도화지에 물감을 묻혀 펼쳐놓은 데칼코마니 형상을 하고 있다.
주천생태공원은 진안군 봉소마을 주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용담호로 흘러드는 주자천 하류에 조성되어 있다. 요즘 생태공원의 이른 새벽은 전국에서 몰려온 사진 마니아들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새벽부터 북적인다. 특히 잔잔한 호수 위로 나무들의 반영이 잘 보이는 촬영 포인트는 작가들의 돌아가면서 사진찍기에 분주하다.
사진가 강호성(60) 씨는 “용담호의 물안개 풍경이 가장 아름다울 시기라 밤새워 달려왔다”면서 “하얀 도화지를 배경으로 자연이 그려내는 다양한 농담(濃淡)의 수묵화를 카메라에 담다보니 어느새 피곤함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용담호 일대 54만2천여㎡에 조성된 주천생태공원은 용담댐이 건설된 이후 3개의 인공호수와 조경수, 유실수, 화훼단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공원이다.
강원도 횡계리에서 마주한 서리꽃
곱디고운 가을 색을 한창 자랑 중인 남쪽 지방과 달리 강원도의 산간지역은 어느새 초겨울이 되었다. 이번 주 들어 날씨가 급강하한 가운데 강원도를 비롯해 고산지역에는 기온이 영하권을 보이며 꽃잎 위에 혹은 떨어진 빨갛고 노란 나뭇잎에 서리가 흰 보석이 되어 곱게 앉았다.
습도가 높고 기온이 내려갈수록 서리 내린 늦가을 풍경과 함께 조만간 상고대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 올 것이다.
하얀 아침풍경을 자랑하는 장소는 전국적으로 많다. 인제 비밀의 정원,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 임실 옥정호 붕어섬, 예산 예당지, 안성 고삼지, 청원 대청호와 괴산 문광지, 진천 초평지, 경남 김해 화포천습지생태공원, 밀양 위양못, 창녕 우포늪, 전남 화순 세량지 외에도 이른 새벽, 두툼하게 옷을 입고 따뜻한 차와 함께 길을 나서면 어디든 단풍과 어우러진 늦가을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강호성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