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나아간 판결 원한다” ...박사방·n번방, 그 후

“우리는 더 나아간 판결 원한다” ...박사방·n번방, 그 후

기사승인 2021-06-02 06:10:01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조주빈.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유포, 판매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과거 사소한 호기심으로 취급되던 불법 촬영물은 조직범죄로 악화됐다. 디지털 성폭력이 더욱 악랄해지는 상황에서 처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서울고법 형사9부(문광섭 부장판사)는 1일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과 범죄단체조직·범죄수익 은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에게 징역 45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42년을 선고했다.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 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 추징금 1억여원, 범죄수익으로 얻은 가상화폐 몰수 등은 원심과 같이 적용됐다.

재판부는 “피해 정도와 사회적 해악, 피고인의 태도를 고려할 때 엄히 처벌하고 사회에서 장기간 격려해야 한다”면서 “형사처벌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장기간 수형생활을 통해 성향이 교정될 수 있는 점, 피고인 아버지의 노력으로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또 다른 재판을 앞두고 있어 추가 형아 부과될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조주빈. 박태현 기자  
재판부는 이날 조주빈 등 박사방 일당의 활동이 조직범죄라는 점을 재차 판시했다. 1심과 같이 박사방 일당들이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다수의 피해자를 유인,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했다고 본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엄벌도 강조됐다. 재판부는 “디지털 성범죄는 기존 오프라인 성범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다수의 피해자를 낳는다. 피해 역시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범죄 행위와 수법 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접하는 특성상 가해자는 범죄 행위에 동참하면서도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여성·아동 피해자를 노예로 지칭했다”며 “피해자를 거래 대상으로 삼고 성적대상화 했다. 건전한 성의식과 성관념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박사방 항소심 선고 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여성단체들은 항소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감형의 아쉬움과 판결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오늘의 판결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며 “여성들은 이미 유사한 범죄·가해에 오랜 시간 무수히 당해왔다.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들은 단지 그 차별과 폭력을 영리화하고 조직화할 정도로 악랄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구조와 문화를 엄벌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재판부는 그들이 행한 범죄가 여성폭력임을 명백히 하며 최소한 감형만은 없어야 했다. 그 시작점이 됐어야 하나 그러지 못한 오늘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 과정에서의 아쉬움도 언급됐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신변 위협 등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주빈 등 박사방 일당 일부는 재판 중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피해자와 교제하는 사이였으며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 등이다. 피해자의 실명이 공개되기도 했다. 피고인에게 주의를 줬지만 이후에도 실명이 수차례 재판정에 울려 퍼졌다. 유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활동가는 “성범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을 걱정 없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더 나아간 판결을, 재판을 원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갓갓 문형욱. 연합뉴스 
텔레그램을 통한 성착취물은 지난 2019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주빈은 2019년 5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여성 피해자 수십명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촬영, 박사방을 통해 판매·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사방 공범들은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을 저지르기도 했다. 

조주빈뿐만이 아니다. ‘갓갓’ 문형욱이 운영한 ‘n번방’도 피해자를 협박, 악랄한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이외에도 고담방, 켈리방 등 여러 텔레그램 채팅방이 파생, 운영됐다.  

이들에 대한 형량은 어떨까. n번방의 운영자인 문형욱은 1심에서 징역 3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조주빈의 공범인 ‘부따’ 강훈, ‘이기야’ 이원호 등에게는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문형욱의 공범 ‘와치맨’ 전모씨, ‘코태’ 안승진 등은 징역 7년과 징역 10년을 선고받는 것에 그쳤다. 피해자가 받은 고통에 비해 형량이 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여전하다. 

미성년자 피고인 중 일부는 장기 10년·단기 5년을 받았다. 미성년자에게 선고될 수 있는 최고 형량이다. 다만 이들이 10년을 채워 출소하더라도 30세가 채 되지 않는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공범인 부따 강훈. 박태현 기자
‘솜방망이’ 비판이 일자 보완책도 마련됐다. 디지털성범죄 형량은 일부 강화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확정 의결했다. 지난 1월1일부터 적용됐다. 새 양형기준에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과 판매, 배포 등의 범죄에 대해 최대 29년 3개월까지 선고하도록 규정됐다. 불특정 또는 다수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거나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에는 초범이라도 감경받지 못하도록 했다. 

지난해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방지를 위한 이른바 ‘n번방 방지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불법 촬영물을 시청하기만 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유통할 경우에는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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