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은 ‘그 모양 그대로 혹은 그대로 줄곧’ 혹은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라는 뜻으로, 1896년 잡지 ‘심상’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2021년 우리는 평소에도 ‘그냥’을 남발하고 있고, ‘걍’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그냥은 언어 다양성을 매우 저하시킨다.그냥이라는 말에는 모든 설명이 압축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맛이 어때”라는 물음에도 “그냥 그렇다”라고 답하거나 “그냥 괜찮다”, “그냥 별로다”라고 답한다. 이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포함하지 않는다. 맛이 너무 짜다, 맵다, 달다, 싱겁다 등 주체적인 사고를 통해 결론짓는 자기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그냥’이라는 말로 한국어 다양성을 축소시키기 때문에 매우 게으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의 습관화’는 소통 장벽을 만든다. 근거와 이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화자의 호불호를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발화자가 표현을 미루기 때문에 청자도 일순간 판단을 미루는 상태, 이른바 ‘사고의 일시정지 상태’를 경험한다.
물론 말하는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약간 함축될 수는 있지만, 단어 자체로는 명징하지 못한다. 이는 추가 논의와 대화 가능성을 끊는 단절형 화법이므로 소통 어려움을 유발한다.
대한민국에서 소통 장벽은 여전히 높다. 세대별, 성별, 지역별, 계층별 갈등에서 이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혐오와 ‘혐오를 위한 혐오’로 뒤덮인 인터넷 댓글 창에 아무 이유 없는 상호비방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싫고, 그냥 잘못됐으며, 그냥 경청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소통 장벽을 느낀다. 오히려 감성에 호소하지 않고 논리 있게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보가 된다.
특히나 혐오나 비난에서 이유를 상실한 그냥은 매우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왜 반대하는지, 왜 비판받아야 마땅한지를 논의하는 지 사라진 채, 그저 이유 없는 주장이 부딪히는 상황은 문제 해결을 담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 사회는 그냥을 멈추고 설득과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주체성 있는 사고를 갖추기 위한 토론 교육이 절실하며 숙의민주주의 재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를 향한 비난을 멈추는 해결책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사회를 피로 사회로 규정했고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인기를 끌었다. 인기를 끌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현대사회를 ‘그냥의 시대’로 규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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